기억의 꽃

原作者 : 浅木原忍 (http://r-f21.jugem.jp/)
原題 : 記憶の花 (http://coolier-new.sytes.net:8080/sosowa/ssw_l/81/1247947449)
分類タグ : 幽香×阿求

 

 

 

 

 

 

 

 

 

       일

 

카자미 유카.

일 년 내내 꽃에 둘러싸여 사는 요괴. 활동장소는 태양의 밭.

모습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 빨간 스커트와 하얀 양산이 특징이다.

자신을 방해하는 자에 한해서 일절 용서가 없고 위험도는 극히 높다.

순수한 힘만으로 다른 자들을 압도하는,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요괴 중의 요괴.

하지만 인간 마을에 장을 보러 오는 일도 있어서, 섣부르게 손을 대지 않는다면 우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취약한 인간 따위에게 기본적인 흥미가 없다는 것이지만――.

 

그녀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적어도 3대 아레의 아이, 아미(阿未) 시절의 환상향연기에는 이미 그녀로 추정되는 요괴의 기술이 있으므로,
천 년 가까이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는 꽃의 삶을, 우리 인간은 덧없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녀 같은 요괴에게 있어서는, 우리 인간의 짧은 생도 그러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붓을 놓고 아큐는 작게 기지개를 켰다.

무릎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있던 고양이가 수염을 움찔 흔들고 잽싸게 무릎 위를 달려 나간다.

그 꼬리를 뜻 없이 바라보다가 손뼉을 쳐 하녀를 부른다. 휴식을 위해 홍차를 가져오게 한다.
어떤 일이건 적당한 휴식은 필요한 법이다.

꽂아 놓은 꽃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마음이 안정되는 향기에 아큐는 심호흡을 했다.

잠시 후 하녀가 가져온 홍차를 입에 대며, 아큐는 환상향연기에 시선을 떨구었다.

당대 환상향연기의 첫 발표부터 이년하고 조금이 흘렀다.
그로부터 새로운 요괴나 신에 대한 기술이 얼마간 늘어나, 기존의 요괴에 대한 기술도 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이년동안의 진척이 잘 되어가고 있느냐면――.

「……미묘하네.」

툭하니 중얼거린 아큐는 한숨을 쉬었다.

기본적으로 아큐는 인간 마을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미아레의 아이는 몸이 약하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꽤 평화롭다고는 해도 어린 아이 혼자 나가서 무사하다고 보증할 수 있을 만큼
인간마을 바깥이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상향연기에 지금까지 실린 요괴들에 대해서도 인간 마을에 나타나는 자 이외에는
풍문에 의지하는 부분이 크다.
주 정보제공자는 하쿠레이 레이무와 샤메이마루 아야다.
레이무는 어쨌든 아야가 제공하는 정보에 한해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지만 어쩔 수 없다.

옛 미아레의 아이 중에는 이런저런 요괴들에게 직접 만나기를 청한 적극적인 사람도 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아큐에게 그런 흉내는 다소 어려운 일이다.

슬슬 하쿠레이 레이무의 새로운 무용담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최근에는 좀처럼 마땅한 이변도 일어나지 않고,
본인도 여전히 그다지 의욕은 없어 보인다.

어쨌든 환상향연기의 증보를 진행한다고는 해도, 애초부터 최근에 소재가 없다는 실정이다.
뭔가 이변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려나, 하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산책이라도 갈까.」

다 마신 홍차 컵을 놓고 아큐는 일어선다. 문을 열자 오후의 노곤한 햇빛이 눈꺼풀에 비친다.
눈이 부셔 가늘게 뜬다.
아큐는 발밑에 달라붙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하루 종일 양지에서 뒹굴고, 마음대로 거닐며, 자유를 구가하는 고양이.

――나도 비슷한가, 하고 쓰게 웃고 아큐는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다지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히에다 가(家) 당주의 얼굴은 인간 마을에 알려져 있다.

자연히 길을 걸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아큐는 자연스레 모조리 기억한다.

미아레의 아이가 가진 능력.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는다지만.

「이야, 아큐짱이 외출이라니 별 일이네.」

「히키코모리라는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와하하, 그래그래, 가끔은 해님도 봐야지.」

「나 참, 히에다 당주님한테 무례하긴. 아큐 님, 좋은 산나물이 들어왔어요.」

「그래요, 다음에 사람을 보낼게요.」

「매번 고마워요.」

포목점의 주인장이 친근하게 웃고, 산나물점의 아주머니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아이들이 웃음소리를 높이며 옆을 지나간다. 인간마을은 오늘도 평화롭다.

「……어머?」

대로가 열린 곳에 다다르자 시끌시끌한 음악과 함께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인파의 중심은 보이지 않지만 짐작 가는 일은 있다. 프리즘리버 소령악단일 것이다.
또 돌발 라이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곡이 끝나고 환성과 박수가 쏟아진다. 그 인파를 멀리서 바라보다가 아큐는 발길을 돌렸다.

소령악단의 연주 자체는 싫지 않다. 단지 사람이 많은 곳에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이 많은 곳은 버겁다. 그것은 대체로 이 숙명적인 힘 때문이다.

걸음을 빨리해 인적이 드문 길까지 돌아가자 아큐는 심호흡을 했다.

사람 얼굴을 보고 아큐는 그 인물에 대한 정보를 읽는다. 기억하고 있는 모든 정보를.

수많은 사람의 얼굴은 정보의 홍수였다.
그것을 미처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들에 익숙하지 않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기억력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그런 의미로는 불편하기도 하다.

이런이런, 아큐는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천진하게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요괴들처럼 이 창공을 마음껏 날아다닌다면 기분 좋을까, 문득 생각했다.

――그렇게, 시선을 되돌린 맞은편.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양산이 꽃집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체크무늬 빨간 스커트와, 하얀 양산의 그림자 사이로 엿보이는 풀빛 머리카락.

가게 앞의 꽃을 구경하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한 옆얼굴에 아큐는 숨을 삼켰다.

마침 오늘 환상향연기의 기술을 검토하고 있던 부분이다.

꽃요괴, 카자미 유카.

「――어머?」

불현듯, 그녀가 양산을 돌려 이쪽을 본다.

요괴의 미소는 기본적으로 위험한 법이다. 강자는 웃는 얼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미소란 여유의 표명이자,
나아가서는 위압이다. 너 따위에 움직일 필요 따윈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자미 유카는 그 얼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연보라색 꽃을 손에 들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오랜만, 이네.」

문득 부는 바람에 손에 든 꽃잎이 흔들렸다.

 

 

 

 

 

       삼

 

카자미 유카라는 요괴를 아큐가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다.

인간마을에 모습을 드러내는 요괴라는 점에서는 만나기 쉬운 상대이긴 하다.
실제로 아큐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요괴도 몇 명이지만 있다.
예를 들면 샤메이마루 아야가 그렇고, 인간마을에 살고 있는 카미시라사와 케이네도 그렇다.
요괴 현자인 야쿠모 유카리도――그것을 알고 지낸다고 해도 되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알고 있다.
또 그녀의 식인 야쿠모 란과도 마을에서 마주치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정도는 나누기도 한다.

섣불리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요괴는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카자미 유카도 지뢰를 밟지만 않는다면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수 있는 상대일 것이다.

――그럼, 왜 자신은 카자미 유카와 지금까지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환상향연기 편찬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지식과 정보다.
인간마을이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정보를 모을 수밖에 없는 아큐로서 보자면,
인간마을에 나타나는 요괴에 한해서는 본래 적극적으로 접촉을 시도해야만 할 것이다.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카자미 유카에게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가 위험한 요괴라서?

아니, 그렇다면 실종의 주범, 야쿠모 유카리 쪽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오랜, 만?」

그녀가 말한 의미를 순간 이해할 수 없어 아큐는 의아해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유카는 몇 번 눈을 깜빡이고는―― 그리고 천천히, 매우 우아하게 미소지었다.

「어머, 미안해. 사람을 착각했나봐.」

여유로운 유카의 미소 뒤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큐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연보라색 꽃잎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하얀 양산이 바람을 받고 희미하게 흔들린다. 꽃처럼.

꿀꺽, 아큐는 침을 삼켰다. 신체의 위험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눈앞의 미소는 온당하다.
강대한 요괴의 여유로운 미소. 그 힘을 자신에게 향하려는 의지는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취약한 인간을 향한 무관심의 미소인가?

「카자미, 유카씨…… 맞죠.」

「그래. 넌―― 히에다 가문 당주구나.」

유카는 느긋한 미소를 띠운 채로 이쪽으로 마주 걸어온다.

손에 들린 꽃은 얇은 색종이를 꾸깃꾸깃 만 것 같은 꽃잎을 가졌다.

「히에다 아큐에요.」

「――그래, 아큐, 구나.」

유카의 손이 이쪽으로 뻗는다. 내밀어지는 꽃. 아큐가 멈칫거리며 그것을 받아들자,
유카는 그대로 지나치며―― 어쩐지 쓸쓸하게 웃었다.

그것은 순간이었고, 아큐가 뒤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양산과 뒷모습만 보였다.

아큐는 손에 든 꽃을 내려다본다. 고요하게 바람에 살랑거리는 꽃의 이름을 아큐는 모른다.

다만 유카가 일순 보여준 쓸쓸해 보이는 미소가, 미덥지 못한 이 꽃잎과 겹쳐 보여서.

「……카자미, 유카.」

그 이름을 한 번 중얼거리고, 아큐는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방으로 돌아오자 마중 나온 하녀가 손에 든 꽃을 보고 말했다.

「어머 아큐님, 어디서 그 꽃을?」

「지나가던 사람한테 받았어요.」

「요즘 계절에 피는 꽃이 아닌걸요.」

신기하다는 듯 꽃을 받아 든 하녀는 방에 꽂아두겠다며 발걸음을 돌린다.

「――무슨 꽃인가요?」

그 뒷모습에 아큐가 물어보자, 하녀는 뒤돌아보며 웃었다.

「스타티스, 에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꽃 사전이라도 다음에 봐두자고 아큐는 생각했다.

타박타박 걸어가는 가정부와 교대하듯이 고양이 한 마리가 아큐의 발밑에 달라붙었다.

「다녀왔어.」

안아 올려 목덜미를 간질이자, 기분 좋은 듯이 고양이는 울었다.

――어쨌든, 꽃에 대한 것보다도 우선 확인해야할 것이 있다.

아큐는 서둘러 자기 방으로 향했다.
역대 환상향연기의 원본은 저택 안쪽 창고에 보관하고 있지만, 사본은 자기 방에도 있다.

안고 있던 고양이를 놓아주고 서재에서 사본을 꺼낸다.
카자미 유카로 추정되는 요괴에 대한 기술은 3대, 아미의 환상향연기에서 보인다.

아큐는 묵묵히 한상향연기를 훑어갔다. ――한 번 다 읽었을 무렵에는 해가 이미 기울고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하녀의 목소리에 아큐는 사본에서 고개를 들었다.

「……어쩔 수 없네.」

한숨을 쉬면서, 아큐는 무릎 위의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역대 환상향연기에는 옛날에 한 번씩 훑어봤기에 내용에 관해서는 기억하고 있다.
확인은 그 기억과 비교기 위해서였지만 역시 자신의 기억은 확실했다.

카자미 유카에 관련된 기술은 6대 아무(阿夢)부터 비교적 자세해진다.
그 이전에는 이름도 불확실하다. 꽃밭의 강대한 요괴, 라고 소문의 존재일 뿐이었다.
《유카》라는 이름이 연기 안에 나타나는 것은 아무 때부터다.

6대였던 아무는, 유카와 접촉한 것일까?

『오랜만, 이네.』

유카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아큐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들에게 있어, 몇백년이라는 단위는 《오랜만》이라는 한 마디로 끝나는 것일까.

『어머, 미안해. 사람을 착각했나봐.』

유카는―― 내 모습에서, 옛 미아레의 아이를 보았던 것일까?

뒤돌아본다. 건네받았던 스타티스는 책장 옆에 장식되고 있다.

일어서서 꽃 사전을 꺼낸다. 하녀가 방으로 저녁식사를 가져왔다.
「거기 놔주세요.」라고 대답하고, 아큐는 사전을 펼친다.

스타티스―― 오월에서 유월까지 피는 일년초. 건조화로 이용한다.

꽃말은 《변치않는 마음》. 연보라 꽃은――《지식》.

그렇구나, 나랑 잘 어울리는 꽃일지도 몰라, 하고 아큐는 연보라색 꽃잎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사

 

무례한 손님은 보통 밤에 나타난다.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영업용 스마일을 띠고 있는 까마귀텐구였다.

「무슨 용무시죠?」

방석에 앉는 샤메이마루 아야에게, 붓을 놓은 아큐는 홍차를 마시면서 물었다.

「오늘, 소령악단이 돌발 라이브를 인간마을에서 열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왜 저에게?」

「회장 근처에서 당신을 봤다더군요. 라이브를 들으셨다면 감상이라도 들려주실 수 없나 싶어서요.」

라이브 회장 근처는 지나쳤을 뿐이지만 누군가 눈치 채고 있었나. 아큐는 한숨을 쉰다.

「산책하면서 마침 지나쳤을 뿐이에요. 딱히 듣지는.」

「아야야야야, 이거 기대가 빗나갔네요.」

과장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아야는 만년필 뒷부분을 뺨에 대며 고개를 기울인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면서, 아큐는 쓰고 있던 문장에 눈을 돌린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은 가필하는 부분의 초고다. 환상향연기의 기술은 평소에 추가하고 있다.
새로운 이변이 있으면 물론이고, 사소한 사실이라도 써두면 손해는 없다. 정보의 취사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샤메이마루 아야는 아큐에게 있어서 귀중한 정보원 중 하나다.

사실 그녀의 기사를 얼마나 신용할 수 있는지는 미심쩍지만――.

「용건은 그것뿐인가요?」

「아뇨아뇨, 한 건 더 있어요.」

영업용 스마일을 무너트리지 않고, 아야는 가볍게 앉은 자세를 고쳤다.

「카자미 유카라는 요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신지?」

아큐는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아야는 순전히 미소를 띤 채, 이쪽을 보고 있다.

「……그 요괴에 대해서라면, 앞서 발표한 환상향연기에 이미 기록했습니다만.」

「네, 알고 있어요. 단지―― 그 연기의 기술은 불완전한 건 아닌지 싶어서.」

아야의 진의를 저울질하며, 아큐는 아야를 향해 바로 앉았다.

「물론, 그 연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만―― 왜, 이제 와서?」

초고의 발표는 꽤 전의 이야기다.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 지금인 이유를 알 수 없다.
아큐는 미간을 찡그렸다.

「스타티스가 피어있었으니까요.」

느닷없이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샌다. 아큐는 멍하니 눈을 크게 떴다.

아야는 어딘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큐의 등 뒤에 피어있는 꽃―― 스타티스를 본다.

「역시, 《당신》에게 그 꽃을 보냈군요.」

「……무슨 의미인가요.」

아큐의 물음에 아야는 이런이런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전에 환상향연기――미해결자료 항목으로, 저희 신문기사에 정정을 요구받았습니다만.」

이야기가 비약한다. 야쿠모 유카리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현기증을 느끼면서 아큐는 끄덕였다.

「이상했어요. 그녀가 어째서 그러고 있는지.
그리고 연기에서 그녀에 대한 기술이 또…… 아니, 이건 비약인가요. ――어쨌든, 그걸 읽고 납득했습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얼굴을 찡그리는 아큐에게 아야의 미소는―― 연민처럼 보였다.

「저는 방관자. 답은 가르쳐줄 수 없어요. 이건 취재협력자에 대한 괜한 참견입니다.」

「참견?」

「당신이 《당신》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그녀인 채랍니다, 아큐 씨.」

계속되는 돌려 말하기에 아큐는 초조해져 책상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야는 아랑곳 않고 야쿠모 유카리처럼 애매한 말을 계속했다.

「물론, 당신은 히에다 아큐니까―― 무시해도 상관없어요. 그녀도 그건 알고 있겠죠.
사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하지만――.」

「불확실한 정보만 떠들 생각이라면, 이제 됐습니다.」

이 이상 들어도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아큐가 그렇게 말하자 아야는 웃으면서 「아야야야야, 이거 실례.」하고 일어섰다.

「뭐, 모든 건 당신이 하기 나름이란 얘기에요. 깨닫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것도, 생각해내는 것도 잊는 것도――.」

그것뿐인 이야기입니다. 아야는 그런 말을 남기고 문을 열고 나가 마당에서 날갯짓을 했다.

밤하늘에 녹아드는 검은 날개를 눈으로 좇으며, 아큐는 식은 홍차를 홀짝였다.

『어머, 미안해. 사람을 착각했나봐.』

고개를 기울인 유카의 침착한 미소가 떠오른다.

식은 홍자가 몹시도 떫어서 아큐는 얼굴을 찡그렸다.

무릎 위에 날아든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등을 쓰다듬으면서 아큐는 중얼거린다.

「……유, 카.」

낯선 울림이 몹시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오

 

오해받기 쉽지만 아큐에게는 전생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환상향연기에 관한 일 이외―― 선대인 아야(阿弥) 이전의 개인적인 기억은 대부분 없다.

개인을 형성하는 것이 기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큐와 같은 미아레의 아이는 히에다 아레 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레의 기억 그 자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는, 역시 히에다 아큐는 히에다 아큐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5대 아고(阿悟)나 7대 아시치(阿七)는 남성이다. 그 기억을 자신이 갖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역대 미아레의 아이 중《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전생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애초에 단명 하는 미아레의 아이가 적어도 짧은 삶 동안만이라도
《자기》가《누구》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도록 하기 위한, 누군가의 배제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과거 미아레의 아이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는 당사자가 남긴 일기 같은 것들뿐이다.
예를 들어 6대, 아무 때는 아직 위험한 시기였기에
당대 환상향연기도 본래목적인 《요괴대책》서적으로서의 성격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아무의 유카에 대한 기술이 상세한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카가 인간마을을 침범하는 사태가 있었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아무의 유카에 대한 기술은 훨씬 위험하게 묘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가 적은 카자미 유카에 대한 기술은, 훨씬 가벼웠다.

현재 환상향연기도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요괴에 대한 기술이 위험한 것과 비교하자면, 본인의 위험도는 꽤 온화한 수준이다.

몇 번이나 그 항목을 다시 읽으면서 아큐는 한 가지 확신했다.

아무는 당시 유카와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다.

그 당시 사람과 요괴가 교제하는 것은 지금과 비교하자면 명백히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는 카자미 유카와 어떤 형태로든 교류를 가졌다.

유카의 말과, 아야의 애매한 《참견》을 떠올리자 그 확신은 뚜렷해진다.

하지만―― 아야의 그 말들은 무엇을 전하려던 것일까.

그것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무래도 아큐로서는 심기가 불편했다.

 

「아큐 님.」

문을 열고 나타난 하녀는 양손에 꽃을 가득 들고 있었다.

여러 색깔의 스타티스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큐에게 하녀는 쓰게 웃었다.

「항상 꽃을 갖다 주던 꽃집 아가씨가, 철이 아닌데도 잔뜩 피었다면서.」

「그런가요.」

방에 꽂아두는 꽃은 마을의 꽃집이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저번 것이랑 같이 꽂아둘게요.」

「부탁드려요.」

연보라, 노랑, 분홍. 얌전한 꽃잎과 화려한 색깔. 장식되는 꽃을 바라보다가 아큐는 일어섰다.

「아큐 님, 어디 가시나요?」

「조사를 좀 하러 서고에요. 꽃은 맡겨둘게요.」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하녀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아큐는 문을 닫았다.

자기 방 서재에는 과거 미아레의 아이가 쓴 일기까지는 꽂아두지 않았다.
그것들은 서고 한편에 한꺼번에 보관돼있을 것이다.

미아레의 아이의 사적인 일기에 관해서는, 자기 것 이외에는 그다지 열심히 읽은 적이 없다.
물론 그것들도 과거의 환상향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자료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쓴 것이다――는 의식이 기피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과거의 일기를 다시 읽는 것은 부끄러운 법이다.

서고의 문을 연다. 피어오르는 먼지에 아큐는 입가를 가렸다.

하인에게 말하면 서고에서 책을 가져와줄 테지만 자기가 찾는 편이 빠른 경우도 많다.
서고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는 머릿속에 들어있다. 이럴 때 구문지의 능력은 편리하다.

책장이 줄줄이 선 좁은 공간에 몸을 들인다. 목표로 한 선반에 손을 뻗는다.
역대 미아레의 아이, 그중 6대―― 아무의 일기를 꺼내들고 아큐는 발길을 돌렸다.
서고는 여기서 읽기에는 어둡고 먼지가 많은 공기는 몸에 좋지 않다.

서고를 나오자 석양빛이 이상하게도 눈부시게 느껴졌다.

마루의 양지에 뒹굴 거리는 고양이를 보면서 아큐는 방으로 돌아온다.
하녀의 모습은 이미 없고, 색색별로 스타티스가 책장 옆을 선명하게 물들이고 있다.

「……그럼.」

책상 앞에 앉아 아무의 일기를 연다.

열화한 종이를 찢지 않도록 신중하게 넘기면서 아큐는 내용을 대충 훑었다.

――하지만 유카 같은 요괴에 대한 기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숨을 쉬면서 아큐는 일기를 닫았다. 기대가 빗나갔다.
다른 일기를 확인하는 일은 다음에 해도 될 것이다. 그렇게 서두를 것도 없다.

「하지만……. 활동적이었구나, 3대 전의 나는.」

한 번 더 일기를 펼치면서 아큐는 감탄이라고도 실망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한숨을 흘렸다.

하쿠레이 신사는 괜찮다. 안개의 호수도 상관없다. 태양의 밭, 헤매는 죽림도 아슬아슬하게 괜찮다.
하지만, 요괴의 산이나 명계까지 가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게다가 환상향이 지금보다도 명백히 위험한 시대에.

활동적인 건가, 무모한 건가, 이 미아레의 아이는 정말로 몸이 약했던 걸까.
일기 안에는 희희낙락 환상향 각지를 돌아다녔다는데, 아큐는 이 일기가 픽션은 아닐지 의심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이럴 기운은 없다. 겨우 하쿠레이 신사까지 가는 정도이고, 안개 호수나 태양의 밭까지는,

――태양의 밭?

아큐는 한 번 더 일기장을 본다. 확실히 아무는 태양의 밭에 갔었다. 일기에 그렇게 쓰였으니까 확실하다.
――그렇다면 역시 유카와 만났던 것일까.

하지만, 만났더라면 어째서 일기에 쓰지 않았을까?

다른 일자를 찾는다. 예를 들면 요괴의 산 산기슭까지 간 이야기. 경비 텐구에게 돌려보내졌다고 쓰여 있다.
외견의 묘사로 보건대 이누바시리 모미지일지도 모른다.
헤매는 죽림에서 토끼에게 속았다는 일은 이나바 테위의 짓이리라.

하지만 태양의 밭에 대한 것은 그 아름다움과 요정에게 짓궂은 장난을 당했다는 이야기뿐으로,
유카로 보이는 요괴의 기술은 역시 찾을 수 없었다.

태양의 밭에 유카는 없던 것일까? 아무의 환상향연기의 기술을 떠올린다. 카자미 유카.
――태양의 밭에 사는 요괴, 라고 쓰여 있었다.

히에다 아무는 카자미 유카와 만났을까?

만났다면―― 일기에 쓰는 걸 깜빡했다? 아니면, 일부러 쓰지 않았다?

일기의 글자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아큐는 눈썹을 모았다.

――과거의 나는, 태양의 밭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거기서 그녀와 만났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당신이 《당신》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그녀인 채라구요, 아큐 씨.』

샤메이마루 아야는 그렇게 말했다. 어쩐지 연민을 담은 시선으로.

히에다 아큐는 히에다 아레 본인이기도 하고, 아이치(阿一)에서 아야(阿弥)까지의 여덟 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정말 본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 는――.」

떠올릴 수 없는 것을 없을 터였다. 하지만, 확실히 있었다.

과거의 난,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던가――.

섬뜩함을 느껴 허공을 바라보며, 아큐는 한 때 자신의 것이었던 일기를 덮었다.

 

 

 

 

 

       육

 

「무슨 일이야? 요즘에 이변 같은 건 딱히 없어.」

차를 홀짝이면서 하쿠레이 레이무는 눈을 반쯤 뜨고 아큐를 보며 말했다.

「네, 그건 알고 있어요.」

홍차를 마시면서 아큐는 시선을 받아넘겼다.

――하쿠레이 레이무가 인간마을에 온다면 저택에 와달라고 전해달라.

하인에게 그렇게 부탁한 다음 날, 하쿠레이 무녀는 즉시 붙잡혔다.

그래서 지금, 아큐는 레이무와 마주 보며 홍차를 마시고 있다.

「무용담을 들려달라는 게 아니야?」

자신이 레이무를 부르는 것은 대부분 이변 후다.
그 이변에서 만났던 요괴나 이것저것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고
그녀의 이변해결 무용담을 듣는 것은 아큐의 어엿한 일이다.
이변 내용에 따라서는 입을 다무는 일도 있었지만.

「카자미 유카라는 요괴를, 알고 계시죠.」

「유카? 그야 뭐 알고는 있는데.」

의아하게 눈을 깜빡이는 레이무에게, 아큐는 찻잔을 놓고 다시 말했다.

「태양의 밭에, 절 데리고 가주세요.」

「……흐음.」

「그래서, 여차하면 카자미 유카에게서 절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려요.」

레이무는 수상쩍다는 듯이 한껏 의심스런 눈초리였다.

 

돌이켜보면, 레이무보다는 키리사메 마리사에게 부탁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리사는 인간마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가 의절당한 키리사메 도구점의 딸이라는 것은,
인간마을의 사정에 밝은 자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마을에 오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그것과 관련돼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부탁으로 하인을 마법의 숲까지 가게 할 수도 없었다.
마리사가 자주 있는 하쿠레이 신사로 보내는 것 역시 인간마을에서는 나름대로 거리가 있다.

어쨌든,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봤자 어쩔 수 없다.

「무겁지 않나요?」

「가벼워. 너무 가벼워서 불안할 정도야.」

하쿠레이 레이무는 날 수 없는 아큐를 등에 업고 환상향의 하늘을 날고 있다.

인간과 다르지 않는 모습의 요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환상향에서도 인간으로서 날아다니는 자는 드물다.
그 드문 사람 중 하나인 하쿠레이 레이무는 중력을 무시하고 둥둥 떠다니듯 하늘을 난다.

아큐는 물속에 떠있는 느낌으로 레이무에게 매달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환상향의 광경을 감상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환상향. 인간마을 바깥에 나가는 것도 여의치 않으니 훨씬 더 신선하다.

「근데, 왜 일부러 유카한테까지.」

「정보 수집을 위해서요.」

「솔직히, 가만히 있어도 싸움을 거니까 그다지 상대하기 싫지만.」

레이무는 한숨을 쉬면서도 둥실둥실 태양의 밭을 향해 날았다.

그리고 잠시 후, 둥근 모양의 초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해바라기가 필 계절은 이미 끝났다. 여름 동안에는 흐드러지게 피던 노란 해바라기도 지금은 씨를 남길 뿐이다.
그렇게 되자 이 장소도 조금은 쓸쓸하다.

「자, 도착. 유카가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해바라기 밭 옆에 내리면서 레이무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큐는 등에서 내려와 넓은 초원을 둘러본다.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스커트와 하얀 양산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이곳에 오면 무언가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역시 그러지는 않았다.
그 장소에 가는 것만으로 선대 이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면
자신도 훨씬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사박, 사박, 풀잎을 밟으면서 아큐는 나른한 하늘을 올려보았다.

아무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리고 그녀는―― 여기에서.

「――어머?」

목소리가 쏟아지듯이 울려 퍼졌다. 「윽.」하고 레이무가 얼굴을 찡그린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이런 계절에, 별난 손님이네.」

뒤돌아보자, 햇빛 아래에서 흔들리는 하얀 양산과 체크무늬 빨간 스커트.

「그렇지? ――히에다 아큐 씨.」

카자미 유카는 양산을 돌리면서 하얗게 된 해바라기를 뒤로 하고 미소 지었다.

 

 

 

 

 

       칠

 

「에스코트 역할은 당신? 고생했네.」

「전혀.」

레이무를 돌아보며 유카는 또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 뒤편에 어떤 감정이 숨어있을지 아큐로서는 알 수 없다. 요괴의 감정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지?」

흔들리는 양산이 풀잎 위에 엷은 그림자를 떨어트린다.

그 모습을 보아도 아큐의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없다.

「――저는, 당신과 만난 적이 있나요.」

아큐의 말에 유카는 고요하게 미소 지었다.

「저번에 마을에서 지나쳤지.」

「그 이전에요.」

「너와 만났던―― 말을 나누었던 건, 그게 처음인걸?」

유카의 미소는 흔들리지 않는다. 천년 가까이 사는 요괴에게 인간적인 감정은 과연 필요한 걸까, 아큐는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은 천년이라는 세월에 견딜 수 있을까――.

「아뇨, 전 당신과 만났어요. ――제가 아직 아큐가 아니었던 시절에.」

그 말에, 아큐는 눈을 내리깔고 양산을 내린다.

햇빛을 받는 유카에게 이끌려 아큐도 하늘을 본다. 머리 위에는, 빈틈없이 칠해진 파랑.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니에요. 히에다 아무는, 예전의 저는 당신과――.」

스윽, 유카가 한 걸음 아큐에게 다가왔다.

숨을 삼킨 아큐에게 내밀어진 것은―― 유카가 손에 들고 있던 양산.

「햇빛이 강해.」

유카는 어디까지나 태연하게 미소 짓는다. 아큐에게는 감정을 눌러 죽인 것 같은 미소로 보인다.

양산을 받아 든 아큐에게서 유카는 빙글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건, 히에다 아큐가 아니야. ――그렇지?」

「――――.」

확신했다. 아무는 역시 유카와 만났다.

하지만, 아큐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 예전 자신에 대한 것인데도.

――아니, 그것은 정말 《나》에 대한 것일까.

「저는,」

「사람을 착각한 거야, 히에다 아큐 씨.」

그 이상의 반박을 가로막는, 날카로운 말.

아큐는 입을 다물고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아큐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여기서는 알 수 없다.

「돌아가렴.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태양의 밭에 살고 꽃을 좋아하는 요괴라고만 적어두면 돼.
네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야.」

그리고 아큐를 뒤돌아보며, 몹시 가학적인 미소를 띤다.

「돌아가자, 아큐.」

레이무가 달려와 아큐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몸이 이끌린 아큐의 손에서 양산이 떨어졌다. 바람이 분다.
둥실 떠오른 양산은 유카의 손에 빨려지듯이 들어가고, 유카의 표정은 양산에 가려진다.

레이무가 안다시피 해서 떠오른다. 아큐는 몸을 맡긴 채, 그림자를 드리운 하얀 양산을 내려다보았다.

『사람을 착각한 거야.』

그렇게 말한 감정 없는 목소리가 귀에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팔

 

인간마을에 돌아왔을 쯤에는 이미 해가 충분히 지고 있었다.

레이무는 인간마을 입구 부근에 아큐를 내린다.

「네가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질린 듯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레이무는 한숨을 쉰다.

「유카한테 관여하다간, 목숨이 몇 개가 있어도 부족할 거야.」

「……그래서 당신한테 부탁한 건데요.」

「나도 죽고 싶진 않거든. 다음에는 마리사한테 부탁해봐.」

어차피 요괴는 하쿠레이 무녀를 죽이지 못한다.
아큐가 그렇게 반론하려고 하자 레이무는 둥실 떠올라 하쿠레이 신사 방면으로 날아갔다.

그것을 배웅하며 아큐는 한숨을 쉰다.

――어째서 애써 태양의 밭까지 갈 생각 따위를 한 걸까.

신경쓸만한 것도 아니었다. 과거의 자신이 유카와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게 어쨌다는 것일까.
히에다 아무가 만났을 가능성이 있는 요괴는 그밖에도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 카자미 유카가 이렇게나――.

저택까지 걸으면서, 아큐는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머릿속에서 굴린다.

별 수 없는 생각이지만 멈출 수가 없다.

「어머, 히에다 저택의――.」

불현듯 들린 목소리에 아큐는 발을 멈췄다. 돌아보자 색색별로 가득한 꽃들.
꽃집 앞에서 점원 아가씨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큐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연보랏빛으로 색이 변하는 하늘에, 문득 방에 꽂아두었던 스타티스를 떠올린다.

「아아, 저번에 많은 스타티스를 보내주신 건 감사드려요.」

아큐가 그렇게 말하자, 「네?」하고 꽃집 아가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택까지 전해주셨죠?」

「――아뇨, 미안해요. 스타티스 말인가요? ……그런 기억은 없는데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꽃집 아가씨는 가게를 돌아본다. 스타티스는 그곳에 없었다.

「네? 그럼――.」

자기 방에는 지금, 스타티스가 잔뜩 꽂혀있다. 그건――.

『스타티스가 피어있었으니까요.』

샤메이마루 아야는 그렇게 말했다.

『항상 꽃을 갖다 주던 꽃집 아가씨가, 철이 아닌데도 잔뜩 피었다면서.』

하녀는 스타티스를 품에 들고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당신》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그녀인 채랍니다, 아큐 씨.』

스타티스의 꽃말은――《변치 않는 마음》

아큐는 놀란 얼굴로 꼼짝 않다가 꽃집에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저택에 돌아간다.

「어머, 아큐 님, 어서오세요.」

숨을 헐떡이며 저택에 돌아온 아큐의 모습에 마중 나간 하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에 스타티스를 가져온 그 하녀에게 아큐는 호흡을 진정시키고 다가갔다.

「저기, 방에 있는 스타티스―― 그걸 전해준 사람은, 누구죠?」

「네? 그야 물론, 꽃집의――.」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죠?」

「어떤 모습이라뇨. 하얀 양산에 빨간 스커트를.」

――아아, 아큐는 눈앞을 가리며 천장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렇다면, 그 꽃의, 그 말의 의미는. 카자미 유카란 요괴는――.

『――그래, 아큐, 구나.』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아큐에게 한 송이 스타티스를 내밀었던 걸까.

그 꽃이야말로 그녀의,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한마디였다면, 나는.

――히에다 아큐는.

『하지만 그건, 히에다 아큐가 아니야. ――그렇지?』

아큐는 방문을 열었다. 책장 옆에 스타티스는 다양한 색깔의 여러 꽃잎을 피고 있다.

연보라색 스타티스는 《지식》.

분홍색 스타티스는 《영구불변》.

노란색 스타티스는――《사랑의 기쁨》.

「변치 않는, 마음…….」

그녀에게 있어서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은 얼마큼의 길이인 걸까.

인간인 자신으로서는 아득해질 것만 같은 시간,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며――.

아큐는 책장에 두었던 히에다 아무의 일기를 꺼내든다.
카자미 유카에 대해서는 이 일기에 쓰이지 않았다. 아마도 일부러 빠트렸을 것이다.

아무가 그것을 일기에 남겨두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자신들을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전생과 함께 잃어버리는 기억. 하지만, 수명이 긴 요괴들은 계속 살아간다.

 

――이를 테면 만약, 만약 히에다 아무가, 카자미 유카라는 요괴와 사랑을 했더라도.

다시 태어난 히에다 아시치도, 아야도, 아큐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 본인이기도 한 미아레의 아이들은 그래도 모른 채 살아간다.

일찍이 자신이 사랑했던 자가, 아직 이 땅에 살아간다는 것을――.

 

「전, 어쩌면 좋나요?」

카자미 유카라는 요괴. 전해진 꽃. 남은 것은 단편에 불과하다.

설령 자신이 유카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히에다 아무가 아니다.

카자미 유카를 사랑했던, 또는 카자미 유카가 사랑했던―― 히에다 아무가 아니다.

「나는――.」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는 자가 전생해도 계속 살아있다.

그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요괴가 늘어났다는 것만으로 자신은 분명 마음 편하게 전생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남겨진 자들로서는.

「…………읏.」

아큐는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자 창가에서 보이는 하늘은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아큐 님, 저녁 준비가――.」

「아뇨, 됐어요.」

말을 거는 하녀를 지나쳐, 아큐는 달렸다.

「아큐 님?」

「한 번 더 나갔다 올게요. ――오늘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어, 아, 아큐 님, 잠시만――.」

당황해서 외치는 하녀에게서 도망치듯이, 아큐는 저택을 뛰쳐나왔다.

샛별이 멀리서, 황혼의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그 방향을 목표로 아큐는 달린다.

하쿠레이 레이무의 등에 올라 날았던 풍경의 기억을 의지하며―― 그 장소를 향해.

 

 

 

 

 

       구

 

태양의 밭은 이렇게 멀었던가.

숨을 몰아쉬면서, 다리를 비틀거리면서, 아큐는 어둠속을 계속 걸었다.

주변은 이미 밤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벌레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지고 있다.

달빛만이 시리도록 선명하게 사람이 걷는 길을 밝히고 있다.

평소 저택에서 나오지 않는 자신이 얼마나 체력이 없었는지를 깨닫는다.
아마도 그렇게 먼 거리를 걷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벌써 다리가 매우 무겁다.
사고가 멍해지고 밤보다 깊은 어둠이 시야를 가득 메우려고 한다.

――히에다 아무는, 옛날의 나는, 이 길을 걸었던 걸까.

그녀를 만나러―― 그 장소로 향했던 걸까.

게다가 지금, 내가 가서, 뭘 하려는 걸까――.

「앗――.」

다리가 꼬였다. 몸이 기울었다. 중력이 아큐의 몸을 지면과 부딪치게 하려고 한다.

지금 넘어지면 이제 일어설 수 없다.
그런 확신을 이미 말을 듣지 않는 하반신이 전하고 있다. ――이제, 어쩔 수가 없다.

가까워지는 지면에, 아큐는 질끈 눈을 감았다.

 

「정말――너는 무모한 인간이구나.」

뻗은 손이 아큐의 몸을 받았다.

그것은 몹시도 다정한 손이었다. 자신은 언젠가, 이 손에 안겼던 적이 있다.

아득히 옛날, 감미로운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난 기분이 들어서――.

「……유카.」

그 이름을, 아큐는 자연스럽게 입에 올렸다.

올려다 본 카자미 유카의 얼굴은, 달빛에 비쳐―― 유카에게는 몹시도 덧없는 미소로 보였다.

「당신 같은 인간이, 이런 시간에 이런 곳을 걸으면 안 돼.」

설득하려는 말은 울고 싶을 만큼 상냥하다.

아큐는 하늘을 향했던 손을, 유카의 등에 꽉 둘렀다.

품에 안긴 따스함이―― 굉장히 그리웠고, 기분 좋았다.

「어째서――.」

아큐는 그저 유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그 물음을 중얼거렸다.

「어째서, 제게 그 꽃을 보냈나요.」

유카는 대답 없이, 그저 아큐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제가, 옛날의 제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그렇다. 히에다 아큐는 더 이상 히에다 아무가 아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스타티스를, 아큐에게 보냈다.

꽃말은 《변치 않는 마음》. 수백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

「……꽃은 피고, 지고, 씨앗을 남기고, 또 피어나.」

속삭이는 말은 풀벌레 소리에 녹을 만큼 고요한 울림이었다.

「그건 분명 다른 꽃이겠지. 하지만 난, 꽃이 지고 남긴 씨앗을 알고 있어――.」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꽃은 핀다. 계절이 새로이 돌아올 때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그것을 미아레의 아이의 일그러진 생과 겹쳐보는 것은, 어쩌면 오만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그뿐인, 이야기야.」

아큐는 고개를 들었다. 유카는 어디까지나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얼마나 길게 살더라도―― 살아있는 한, 누군가를 바라고 말지도 모른다.

그것이 업이라면, 인간도 요괴도, 무엇 하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렇기에 아큐는, 그렇게 속삭였다.

「옛날에 당신과 만났던, 저랑 꼭 닮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유카는 미소 지은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걸 들어서, 너는 어쩌려는 거니?」

「아무 것도 하지 않아요.」

아큐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다만, 미소 지었다.

「히에다 아큐는, 그저―― 카자미 유카를, 알고 싶어요.」

그때 유카의 얼굴은 분명 울 것만 같았다고, 아큐는 생각했다.

 

 

 

 

 

       십

 

문득 붓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다를 것 없는 평소대로의 자기 방 풍경이 있을 뿐으로, 불현듯 숨을 내쉰다.

무릎 위의 고양이가 울었다. 등을 쓰다듬으며 책장을 돌아본다.

그 곁에는 스타티스가 피어있다.

연보라색과, 분홍색과, 노란색의 꽃이 이 방을 다채롭게 물들이고 있다.

고양이가 수염을 움찔하고는 훌쩍 무릎에서 내려왔다.

붓을 벼루에 두고 일어선다. 문을 열자 눈부신 푸른 하늘이 펼쳐져있다.

――또, 그녀를 만나러 가볼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 하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홍차를 가져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컵에 따라진 홍차를 입에 댄다.

그리고 쓰고 있던 환상향연기에 시선을 떨어트린다.。

그곳에 기록돼있는 것은 꽃에 둘러싸여 사는, 어떤 오래 산 요괴――.

「아토(阿斗)[각주:1] 님?」

웃고 있던 나에게 하녀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미소 짓고는, 홍차를 다 마시고 일어선다.

그녀는 또 그 장소에서 날 기다리겠지.

그리도 나는 또, 그녀와 만나러 간다. 지금까지의 내가 그랬듯이.

설령 기억을, 추억을 잃어버렸더라도.

꽃이 다시 피듯이 나는 여기에 있고, 그녀도 그곳에 있으니까.

 

불어온 바람이 스타티스의 꽃잎을 작게 흔들었다.

 

 

 

 

 

 

제 안에서는, 유우카링은 한결같은 아가씨입니다.


 

 
※2010/11/22 추가

속편『꽃의 기억』공개했습니다.

 

浅木原忍
asagihara@u01.gate01.com
http://r-f21.jugem.jp/

 

 

 

 

 


 

 

 

 

 

 

유카가 아큐에게 선물한 연보라색 스타티스입니다.

 

 

 

 

  1. 숫자 10(十)은 토라고도 읽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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