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노 코코로秦こころ의 유래


< 토리야마 세키엔鳥山石燕의 백기도연대百器徒然袋에서 멘레이키面霊気>


하타노 코코로秦こころ는 익히 아시듯 요괴 멘레이키面霊気입니다. 멘레이키는 오니나 텐구와 같이 유명하거나 서적으로 기록된 사료가 많이 부족합니다. 토리야마 세키엔鳥山石燕이 그린 요괴화집 백기도연대百器徒然袋에서 세키엔은

쇼토쿠태자 시기, 하타노 카와카츠는 많은 가면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이 살아난 것과 같이 된 것은 카와카츠가 고안해낸 가면에 생명이 깃들어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꿈 속에서 생각했다.

聖徳太子の時、秦の川勝あまたの仮面を製せしよし。かく生けるがごとく なるは、川勝のたくめる仮面にやあらんと、夢心におもひぬ

라고 일본전통가면극 사루가쿠猿楽[각주:1] 가면요괴 멘레이키面霊気를 설명했습니다. 


세키엔의 멘레이키 설명에 나온 일화는 제아미世阿弥라는 사람이 쓴 풍자화전風姿花伝에도 나와 있습니다.

카미노미야 태자, 천하가 조금 어지러운 때에 신께서 있었던 시기와 부처가 있었을 시기의 길한 전례를 따라, 66번의 흉내를, 그 카와카츠를 불러 마찬가지로 66개의 가면을 만들게 하였다.  즉, 카와카츠에게 사사해 주시었다. 타치바나橘 궁 시시덴柴宸殿[각주:2]에서 이것을 행했다. 천하가 편안해지고 나라가 안정되었다.

上宮太子、天下すこし障りありし時、神代・仏在所の吉例にまかせて、六十六番のものまねを、かの河勝にお ほせて、同じく六十六番の面を御作にて、すなはち河勝に与へたまふ。橘の内裏の柴宸殿にてこれを勤す。天治まり国しづかなり


 여기서 나온 카와카츠는 쇼토쿠 태자의 오른팔 격인 하타노 카와카츠秦川勝 · 秦河勝[각주:3] [각주:4]입니다. 미코와 코코로 대화간에서도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이 하타노 코코로秦こころ 모티브와 관련이 깊은 인물 진하승 · 하타노 카와카츠秦河勝을 일본서기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스이코 11년[각주:5] 11월1일 황태자[각주:6]가 뭇 대부에게 "나는 존귀한 불상을 가지고 있다. 누가 이 상을 가지고 공경할 것인가?"라고 물으니 그때 秦造河勝[각주:7]이 나아가 "신이 예배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불상을 받아 호우코우 사蜂岡寺(코우류우 사広隆寺)를 세웠다.

 推古天皇十一年十一月己亥朔。皇太子謂諸大夫曰。我有尊佛像。誰得是像。以恭拜。時秦造河勝進曰。臣拜之。便受佛像。因以造蜂岡寺。 

스이코 18년[각주:8] 10월 9일 사신들이 조정에 배례하였다. 이때 秦造河勝과 土部連菟에게 명하여 신라 사신의 인도자로 하였다. 
推古天皇十八年十月丁酉。客等拜朝庭。於是。命秦造河勝土部連菟爲新羅導者。

쿄우쿄쿠 3년 皇極天皇三年[각주:9]7월 동국東國[각주:10]의 근방 사람 오오우베노 오오大生部多가 마을 사람들에게 벌레에게 제사지낼 것을 권하고 "이는 토코요의 신常世神이다. 이 신을 모시는 자는 부와 장수를 얻게된다."라고 말하였다. 무당들을 속여 신의 말씀이라 핑계를 대며 " 신을 제사지내기만 하면 가난한 사람은 부를 얻게되고 노인은 회춘하게 된다."라고 말하였다. 이떄문에 소문이 더욱 퍼져, 민가의 재보를 버리게 하고, 술을 차려놓고 채소와 가축을 길가에 늘어놓고 소리를 지르고 "새로운 부가 왔다."라고 말하게 하였다.

서울과 시골都鄙 사람들이 벌레를 잡아 자리에 놓고 노래하고 춤추어 복을 구하고 재물을 버렸다. 도모지 이익되는 바가 없고 손해나고 허비하는 것이 극히 많았다. 葛野의 秦造河勝는 민초의 혹한 바 많음을 미워해 大生部多를 매질하였다. 무당들은 두려워 제사를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사람들은 노래를 지었다.
"太秦[각주:11](하타노 카와카츠秦河勝)는 신 중의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토코요의 신을 때려 벌을 주었다네."

  이 벌레는 언제나 귤 나무에 생긴다. 혹은 산초나무山椒[각주:12](이를 호소키衰曾紀라 한다)에 생긴다. 그 길이는 4촌여, 굵기는 엄지손가락 가량이다. 색은 녹색이며 검은 점이 있다. 그 모습은 꼭 누에를 닮았다.

皇極天皇三年(六四四)七 ◎秋七月。東國不盡河邊人大生部多。勸祭虫於村里之人曰。此者常世神也。祭此神者。到富與壽。巫覡等遂詐託於神語曰。祭常世神者。貧人到富。老人還少。由是加勸捨民家財寶陳酒陳菜六畜於路側。而使呼曰。新富入來。都鄙之人取常世虫置於淸座。歌舞求福。棄捨珍財。都無所益損費極甚。於是。葛野秦造河勝惡民所惑。打大生部多。其巫覡等恐休其勸祭。時人便作歌曰。禹都麻佐波。柯微騰母柯微騰。枳擧曳俱屢。騰擧預能柯微乎。宇智岐多麻須母。此虫者常生於橘樹或生於曼椒。〈曼椒。此云衰曾紀。〉其長四寸餘。其大如頭指許。其色綠而有黑點。其貌全似養蠶。


 인터넷에 秦河勝을 검색하면 신라 장관 , 일본에 있던 신라 지도자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는데 이건 조금 국수주의적 , 민족주의적 사고관에 입각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화재청 헤리티지 채널에서도 신라 지도자 혹은 장관이 아닌 신라 계통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 (일단은)하타 씨는 3세기 말쯤부터 일본에 건너간 중국-신라계 도래 씨족으로 평하고 있습니다. 6~7세기에 일본에서 자라고 일본 국록을 먹었던 사람을 한국인, 신라인 , 한국캐라 주장하고, 이 인물 혹은 설화에서 따온 전혀 다른캐릭터를 한국캐라 하는 것은 조금은 그릇된 애국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캐가 아니라도 하타노 코코로는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잖아요?


-R.I.P.




  1. 申樂 · 申樂 · 산가쿠散樂 등으로 표기하는 가면극으로 간단히 노能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 궁궐에서 즉위식과 같은 여러 의식이 행해지는 곳. 南殿 · 前殿라고도 합니다. [본문으로]
  3. 하타秦 씨는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중국계 도래씨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으로 보는 시각은 일본내 극우와 연관이 있어 제합니다. [본문으로]
  4. 하타 씨는 3세기부터 일본으로 넘어간 신라계 도래씨족이고 하타노 카와카츠는 생몰 불명이지만 6세기 인물로 추정하는데, 굳이 신라계나 도래인이라는 표현을 제하고, 한국인 신라인이라는 표현은 국수주의, 민족주의적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5. 서기 603년 [본문으로]
  6. 쇼토쿠 태자聖徳太子 [본문으로]
  7. 秦河勝=秦造河勝 [본문으로]
  8. 서기 610년 [본문으로]
  9. 644년 [본문으로]
  10. 스루가노 쿠니駿河国. 지금의 시즈오카 현静岡県 후지 시富士市 [본문으로]
  11. 우즈마사라고 읽습니다. 수도에 살던 하타秦 씨의 주거지이자 별칭. [본문으로]
  12. 호소키曼椒는 산초의 옛 표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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