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도는 우산


原作者 : 浅木原忍 (http://r-f21.jugem.jp/)
原題 : 遠回りする傘
        (http://coolier.sytes.net:8080/sosowa/ssw_l/?mode=read&key=1281303749&log=122)
그림 : 11837
번역 : 선배
작품 태그 : 비봉클럽, 코가사…같은 오리캐 출연 약간, 어느 쪽이냐면 사이온지 씨랑 콘노 씨 이야기























 

 





      一


오후가 지나 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오렌지 빛이 비추었다.

질퍽이는 흙 위를 아이가 달려간다. 그런 모습을 곁눈질로 보면서, 나는 렌코와 함께 귀가 중이었다. 아직 네 시 반밖에 되지 않았으나, 2월인 이 시기에는 저녁과 다름없다. 태양도 꽤 저물었다.

「아이는 바람의 아이[각주:1].추운데도 쌩쌩하네.」

목도리로 감싼 목을 움츠리면서, 렌코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후우, 하고 하얀 숨을 뱉었다. 내쉬는 숨이 담배연기라면, 겨울 하늘 밑에서 망을 보는 하드보일드한 사립탐정으로도 보이겠다.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이 더플코트를 입고 털장갑을 낀 나니까 하드보일드도 뭣도 있을 리가 없다. 스스로도 어린애 같은 차림새라고 생각하지만, 부모님이 보내주셨으니 입지 않을 수도 없다. 스스로 세련된 겨울용 코트를 살 자금적인 여유는 결국 이번 겨울에도 없었다. 책값을 최우선으로 생활비를 쓰고 있으니까, 하긴 그렇겠지.

「추워서 그런 거 아니야? 몸을 움직이면 따뜻해진다고, 똑똑한 거야.」

「하아, 노인에게는 이제 그런 쌩쌩함은 없다구.」

아직 십대주제에 무슨 소리인가. 렌코는 여전히 이런 곳에서 묘하게 남성적이다. 뭐 렌코의 경우, 자기가 여성이라고 의식하는 언동자체가 별나지만. 이 파트너에게 스스로의 성별 따위는 세계의 불가사의와 비교하면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 늙은 우리들은 커피로 따뜻해질까?」

「괜찮네. 《달시계》갈까.」

렌코의 말에 끄덕이다가 지갑 사정을 떠올렸다. 뭐, 커피 한 잔 정도라면 어떻게든 된다. ……라고 생각하다 보면, 커피 값이 또 생활비를 압박하지 시작하겠지.

「아니면, 싸게 저기서 캔 커피라도 뽑아가? 따뜻한 걸로.」

내 걱정을 간파한 듯이 렌코가 말했다.

자동판매기에 나열된 컬러풀한 캔과 붉은 「HOT」표시. 달시계의 커피와 자동판매기의 가격 격차에 일순간 진지하게 고민하지만, 고개를 저어 뿌리쳤다.

「겨울하늘 아래에서 싸구려 커피보다는, 따뜻한 공기와 음악 속에서 마스터의 맛있는 커피가 더 좋아.」

살짝 비싸지만.

「어머 메리, 캔 커피도 버릴 수만은 없다고. 캔 커피의 구조적 결함이었던 쇠 냄새를 없애는 기술이 각 메이커에 침투한 이후, 무시할 수 없는 상당한 맛의 캔 커피도 몇 개인가 있기도 해.」

「여전히 카페인 중독이구나.」

「숙녀의 기본소양이야.」

렌코의 커피 소비량이 《소양》이라면 내 활자중독도 《소양》의 부류이다. 이 파트너의 경우, 신경의 굵기에 비례해 위도 건강한 모양이지만. 커피를 너무 마셔서 망가지는 섬세한 위장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카페인을 너무 마시면, 가슴이 작아진다는 속설이 있었던 것 같던데, 그거 사실이었구나.」

「윽. 슬그머니 무례한 말을 하네, 메리.」

「어머, 자신의 가슴둘레를 지적당해서 《실례》라고 생각하는 섬세함이 렌코에게 있을 줄은, 의외였어. ……아하아흐다구」

가죽 장갑 낀 양 손으로 뺨을 꼬집혔다. 꽃도 부끄러워할 소녀의 얼굴에 무슨 짓을 저지르는가. 내가 입을 삐죽 내밀자, 렌코는 하얀 한숨을 내쉬면서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그야 뭐, 일단 이 점은 화내야지.」

「일단?」

「섹스어필의 가치란, 결국 보여주는 대상의 가치관 나름이니까.」

슬그머니 그렇게 말하는 파트너에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오, 달시계 간판 발견. 추우니까 빨리 들어가자.」

내 질문 따윈 없었다는 듯이 렌코는 내 장갑을 잡았다. 두꺼운 털 너머로 느껴지는 손의 감촉은 불확실해서, 나는 하얀 숨을 내쉬면서 그 손의 온기를 확인하려고 마주잡았다.






      二


「어서 오세요. 아, 오셨군요.」

문을 열자, 언제나처럼 아카이(赤井) 씨의 밝은 목소리가 반겼다. 웬일로 점내에는 평소 듣던 재즈나 피아노곡이 아니라 카펜터스(Carpenters)가 흘러나왔다. 나도 아는 멜로디. 「Rainy Days And Mondays」이다. 이미 비는 그쳤지만, 카렌이 죽은 지 백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노랫소리는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점내에는 우리 말고 손님은 없었다. 카운터 안에 앉아있던 마스터가 일어나 이쪽으로 미소 지으면서 인사했다. 손에 문고본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가로운 시간에 뭘 읽던 모양이다.

「두 분, 비를 맞진 않으셨는지요.」

「네, 이미 그쳤거든요. 춥지만요.」

드물게도 마스터, 미나즈키(皆月) 씨가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모처럼 카운터에 나란히 앉았다. 평소에는 테이블 석이지만 다른 손님도 없는 모양이고, 가끔은 괜찮겠지.

「코트, 맡아두겠습니다.」

아카이 씨가 우리들의 코트를 받아 가게 입구에 있는 옷걸이에 걸어주었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라고 일순 생각했지만, 아카이 씨도 일이 없어서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고맙게 서비스 받기로 한다.

「주문은, 늘 마시던 걸로 괜찮나요?」

「네, 메리는?」

「네, 늘 마시던 걸로.」

「알겠습니다. 푹 몸 좀 녹이세요.」

다정하게 미소 짓고는, 미나즈키 씨가 고개를 숙였다. 《늘 마시던 것》으로 통하다니, 우리들도 어엿한 단골이 다됐다.

「비, 몇 시쯤에 그쳤나요?」

아카이 씨가 그렇게 물었다. 「세 시 반 정도였나?」하고 렌코가 대답하자, 「그렇지.」하고 나는 끄덕였다. 네 시까지는 기말시험이었는데, 조용한 교실 밖에서 빗소리가 울렸다. 비가 그친 건 시험 도중이었다.

근데 왜 비에 대해서, 의문이 생겨서 문득 나는 점내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달시계》에는 창문이 없다. 건물 일부분에 지어진 이 가게, 밖에서 봤을 때 본래 창이 있어야할 곳은 카운터의 뒤편이라서, 블라인드와 선반으로 막혀있다. 하긴 이래서는 비가 그쳤는지 어쨌는지도 가게 안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근데,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갸웃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건 오후부터고, 두 시간 정도 성대하게 쏟아지다가 딱 그쳤다. 이 가게 안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걸 마스터나 아카이 씨는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단순히 어떤 용무로 밖에 나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군요. 그럼, 그 손님이 나갔을 때는 그쳤겠네요.」

안도의 한숨을 쉬는 아카이 씨. 나는 의아했다가 가게 입구로 눈이 가고 아아, 하고 납득했다.

우산꽂이에 우산이 하나 덩그러니 남아있다. 어디에도 있을법한 연보라색 우산.

나와 렌코는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다. 그리고 손님용인 우산꽂이를 미나즈키 씨랑 아카이 씨가 썼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저 연보라색 우산은 누가 잊고 간 물건이다.

「아아, 저 우산, 까먹고 갔나보네요.」

렌코도 그걸 알아챘는지 그렇게 수긍했다.

「세 시쯤 지나서 오셨던 손님이 잊고 가셨어요.」

미나즈키 씨가 미소 지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계셨을 때는 엄청 내리던 모양이었어요. 세 시 반쯤 지났을 때는 돌아가셨는데, 그전에 그친 건 불행 중 다행이겠죠. ……사실은, 빨리 눈치 채고 가지러 와주시는 게 좋겠지만요.」

음식점에서 잊어먹기 쉬운 순위를 붙이자면, 아마도 우산이 1위일 것이 틀림없다. 자주 있는 일이라지만 우산꽂이에 주인이 잊은 우산이 남겨진 모습은,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나왔습니다.」

마침 우리들 앞에 따스함을 내뿜는 컵이 나왔다.

방순(芳醇)한 향기와 쓴맛을 입에 머금고, 나는 렌코와 나란히 행복한 숨을 내쉰다.

「역시, 추운 날에는 마스터의 커피라니까요.」

「영광입니다. 한 잔 더, 서비스 해드릴게요.」

「오, 럭키.」

점내의 BGM은 「TOP OF THE WORLD」에서 「SING」으로 변했다. 평소 침착한 분위기의 《달시계》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밝은 멜로디. 하지만 지금은, 2월의 차가운 공기 자체를 녹여주는 커피의 열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 잘 마시고 가요.」

「항상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시간 정도 편히 있다가, 카펜터스의 노래가 한 바퀴 돌았을 쯤에 일어섰다. 서비스로 나온 한 잔은 감사히 마시고 커피 한잔분의 가격을 치른다. 미나즈키 씨와 아카이 씨에게 배웅 받아 가게를 나오는데, 문득 잊고 간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비, 또 내리지 않을까?」

「아까 전 바람 방향이랑 구름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언제나 그렇듯, 나는 안 보이는 것까지 잘도 보는 파트너다.

건물을 나오자 태양은 이미 저물어서 하늘에는 별이 떠올라있다. 비가 내린 기색은 이미 어디에도 없고 활짝 갠 밤하늘이 머리 위에 펼쳐져있다. 나는 하얀 숨을 호 불었다.

「십칠 시 오십 분 십이 초. 메리, 이제부터 어쩔까?」

「난, 내일 제출할 리포트가 있으니까 돌아갈래.」

서로의 집에서 게으름 부리고 싶다는 기분은 들지만, 지금은 학기말. 다행히 진급에 불안한 입장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미완성 리포트를 방치하고 놀 배짱은 없다.

「알았어. 뭐, 어쩔 수 없지.」

「내일 리포트로 나는 거의 끝나는데. 렌코는 어때?」

「음, 시험 두 개 남았어. 뭐, 렌코 님의 두뇌에 비하자면 가뿐하지만.」

나도 산뜻하게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이과에서는 유명인인 렌코와는 달리, 나는 여러모로 평범한 문과생. 4000 자 리포트 하나에 끙끙대는 몸이다.

「그보다, 봄방학을 메리랑 어떻게 보낼지가 더 큰 문제야.」

갑자기 돌아보면서, 렌코는 내 손을 잡았다. 털장갑을 감싸 안는 렌코의 손.

「있잖아 메리, 봄방학에 어디 갈까? 교토 근처는 많이 봤으니까, 좀 더 탐색범위를 넓히지 않을래? 나라라던가, 오사카라던가, 코베라던가. 이세도 좋겠다. 아니면 좀 더 멀리 나가서, 이즈모나 세토우치라던가――.」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파트너에게, 나는 쓴웃음 짓는다.

2개월 가까이 되는 대학의 봄방학, 나도 렌코와 함께 《비봉클럽》의 활동으로 이리저리 다니는 것에 이견은 없다. 없지만――.

「……어디든 좋지만, 그렇게 멀면 여비가 남아나질 않아.」

「행복한 미래를 이야기할 때, 그런 현실적인 말로 찬물 끼얹지 마.」

성대하게 한숨을 쉬고 마는 파트너야말로, 내 행복 자체지만.

그런 말은, 애써 입으로 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지금은.






      三


다음날은 아침부터 쾌청한 겨울하늘이었다.

오후를 지나, 완성한 리포트를 송신하고 나는 의자를 젖히며 크게 숨을 돌렸다.

이번 학기 과제는 이걸로 끝이다. 시험이나 리포트의 결과만 기다리면 되는데, 이변이 없는 한 진급은 문제없다. 2학년부터 소속될 연구실 희망서도 제출했고, 이제 4월까지 마음껏 즐기는 봄방학라이프로 돌입한다.

그러니, 조금 더 기분이 들떠도 좋겠는데――

「……하아.」

방구석에 앉아있는 구미호 봉제인형을 끌어안고, 나는 침대에 엎어졌다. 모두 끝났지만, 뭔가 잊은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면 소꿉친구의 기억력이 부러워진다. 아키(阿希)라면, 「뭔가 까먹은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떠오르질 않는다.」같은 일은 절대로 없겠지.

「뭐랄까, 있지.」

눈앞에 있는 여우의 코끝을 찌르면서, 누구한테 묻는 것도 아닌데 중얼거렸다.

물론 봉제인형이 대답해줄 리도 없고.

하지만 해방감에 잠겨야할 봄방학 돌입에, 이렇게 흐물흐물 거리는 건 손해 보는 기분이다. 나는 일어나서 모바일을 손에 들고, ――그리고 떠올랐다.

「아…… 클래스 회식…….」

그랬다, 이 답장을 이제까지 미루었다.

메일을 확인한다. 답장의 기한은 무슨 인과인지 오늘까지다.

대학의 기초 클래스는 겉모습뿐이긴 하더라도, 이 또한 인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실제로, 내 몇 안 되는 친구인 사이온지(西園寺) 씨도 같은 클래스라는 접점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친해질 수도 없었겠지.

하지만――그렇긴 해도, 지금까지 클래스메이트의 대부분이 「잘 모르는 누구」라는 것도 변함없다. 그런 집단의 회식자리에 내가 참석하면 자리를 어색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다. 그보다 내가 어색하다. 하다못해 작년 학교축제에서 좀 더 클래스메이트들과 교류를 나누는 게 좋았을 텐데, 삼일중 이틀을 감기로 깡그리 빠진 몸으로서 어쩔 수 없다. 덕분에 뒤풀이도 결국 참가하지 않았다.

학교축제 뒤풀이와 마찬가지로 거절하면 된다고, 마음속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역시――동시에, 그래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트너라면 이런 것으로 고민하지 않겠지. 얼굴도 인맥도 지식도 쓸데없이 넓은 그 파트너라면, 어떤 장소에 끼더라도 누가 말을 걸더라도, 빈틈없이 대답하고 적당히 분위기도 띄우고, 능숙하게 해내겠지.

그렇게 세상살이도 사람 사귀기도 능수능란한 파트너와, 그렇지 못한 나.

단순한 콤플렉스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친구 백 명 사귈 수 있을까.」라고는 말들 하지만, 실제로 친구가 백 명이나 있다면 사람과 어울릴 때 생기는 스트레스는 보통이 아닐 것이다.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도 개개인의 호불호는 있고, 그 속에서 밸런스를 지키면서 자기가 서있는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에너지를 쓸 바에는, 혼자서 느긋하게 책이라도 읽고 싶다. 사람을 사귄다는 건 범위가 넓어질수록 고생스럽다.

그렇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는 역시 타인들과 단절돼있다고는 알고 있다. 대학에 들어온 지도 약 일 년. 귀중한 모라토리움, 장밋빛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이번 일 년 동안, 친구다운 친구를 몇 명이나 사귀었냐면――.

「……렌코, 바보.」

꼬옥 여우를 끌어안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렇게 도달하고 만다. 우사미 렌코라는 파트너의 존재.

그녀와 《비봉클럽》으로서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밤중에 만나 오컬트 스폿을 순회하거나, 세계의 작은 수수께끼를 찾아다니거나――그런 시간이, 지금의 내게는 일상이 됐으니까, 그것을 좋아한다.

렌코가 있고 내가 있다.《비봉클럽》은 둘이서 하나, 라고 렌코는 말했다.

둘만의 비밀인 서클. 둘만의 편안한 시간.

――결국, 그게 전부다.

렌코와 있는 시간과 책을 읽는 시간――그것만 있으면 다른 것도 필요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니까, 이 이상 스스로 세계를 넓힐 마음은 없다.

내가 입 다물고 있어도 렌코는 맘대로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면서, 맘대로 아는 사람을 늘려간다. 그 옆에는 나도 있으니까, 나도 아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아.」

이런 생각을 누구한테 이야기한다면 커다랗게 웃음살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안하고 멋대로 머릿속으로만 결론을 내버렸을지도 모른다.

메일의 글자들을 읽는다. 클래스 회식자리. 이 일 년간의 뒤풀이. 모두와 즐겁게――.

모두, 는 필요 없다.

렌코가 그곳에 없으니까――내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니다.

「있지, 렌코.」

눈앞의 여우의 동그란 눈동자에, 렌코의 그 이상한 눈을 겹쳐본다.

진짜 렌코도 이만큼 애교나 귀염성이 있었으면 좋았는데.

「나――」

무엇을 물어보려고 했었지.

눈앞의 여우에게 렌코의 모습을 겹쳐서, 나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더라?

입안에서 맴도는 말은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그저 한숨이 돼서 흘러나가기만 하고,

――갑자기, 휴대전화가 경쾌한 멜로디로 착신을 알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고, 한숨과 함께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이 휴대폰의 착신으로는 낯설었다.

 《사이온지 씨》――그녀가 무슨 일로?

「……여보세요.」

『아, 한 씨? 안녕. 지금, 통화 괜찮아?』

「네, 뭐. ……리포트도 끝난 참이라서.」

『어머, 우연이네. 나도 마침 끝난 참이거든~』

전화 너머에서 사이온지 유코(侑子) 씨는 방울이 구르듯이 웃었다.

『그런데, 한 씨, 지금 한가해?』

「……뭐, 나름대로요.」

『그럼, 지금부터 차라도 마실까.』

사이온지 씨의 말에 나는 조금 고민한다. ――왜 또, 갑자기 나한테?

「차라니, 어디서요.」

설마 갑자기 사이온지 가(家)의 다과회에 불리는 거라면 감당할 수 없다. 나는 그런 명가의 다과회에 어울릴만한 옷도 예절도 갖추지 않았다.

『그래, 그래서 한 씨한테 전화한 거야~.』

「네?」

『그 있잖아, 저번에 가르쳐준 가게. 뭐더라――《달시계》. 거기 어때?』

「……하아. 그러면, 괜찮은데요.」

『어머어머, 고마워~. 그러면, 두시에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릴게.』

「알았어요.」

통화가 끝났다. 전화기 화면을 내려 보면서, 나는 한숨을 쉬고 여우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사이온지 씨랑 둘이서 차? 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아니, 그녀라면 콘노(紺野) 씨와 같이 올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도――.

메모리에서 렌코의 번호를 찾아 통화를 눌렀다. 하지만 응답은 『전화가 꺼져있습니다.』라는 무기질적인 메시지였다. 렌코가 전화기 전원을 꺼뒀다? 눈썹을 찌푸리다가, 짐작가는 이유가 떠올라 한숨을 쉬었다. ――그래, 시험인가.

이어서 아키의 번호를 찾았지만, 나는 결국 한숨과 함께 전화기를 닫았다.

아키한테 이런 일로 도움을 구한다면, 실컷 비웃음당하고 기가 막혀하다가 거절할 것이 뻔하다.

도대체 왜 사이온지 씨가 나를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난제, 나 혼자서 풀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시계를 본다. 오후 한 시를 지나고 있다. 대학까지는 걸어서 이십분이니까, 천천히 준비해서 나가면 딱 맞을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회식자리를 알리는 메일의 『답신』버튼을 눌렀다.






      四


비가 그쳐서인지 추웠던 어제에 비해 오늘은 꽤 포근하다.

콘노 씨가 함께일 거라는 내 예상과는 반대로, 사이온지 씨는 혼자서 나타났다.

「기다렸지, 한 씨.」

시간에 맞게 온 그녀의 모습에, 나는 꾸벅 숙였다.

시험기간이라 사람이 적은 캠퍼스긴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역시 왠지 모르게 눈에 띈다. 근본적으로 두르고 있는 분위기가 다른 학생과는 남다르기 때문일지도.

「안녕하세요. ……콘노 씨는?」

「요우코(陽子)는 리포트. 지금쯤 방에서 끙끙 앓고 있겠지~.」

그렇게 쓴웃음 짓고, 「그래서, 지루했거든~」하고 사이온지 씨는 덧붙였다.

――그렇구나, 막 시작한 봄방학을 같이 보낼 사람을 기다린다는 의미로는, 나도 그녀도 똑같은 모양이다. 약간, 사이온지 씨에게 친근함을 느꼈다.

「한 씨야말로, 우사미 씨는?」

「렌코는 시험 중이에요.」

「어머, 그러면 우리들이 봄방학을 일찍 시작한 거구나.」

 즐겁게 웃고는, 사이온지 씨는 「그럼 가자.」하고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걸어갔다. 나는 서둘러 옆에 섰다. 그녀도 역시 마이페이스인 사람이다.

「근데, 한 씨가 와줘서 다행이야~.」

「……뭐가요?」

「왜냐면, 혼자서 찻집 들어가기도 좀 그렇잖아~.」

그런 건가. 나는 잘 모르는 감각이다. 뭐, 나도 《달시계》에 갈 때는 항상 렌코랑 함께였고, 혼자서 간 적이 없긴 하지만.

「저번에 한 씨가 소개해줬을 때, 마셨던 커피가 맛있어서 또 가고 싶었거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요우코가 안된다고 하니까 곤란했어.」

「그래서 저인가요.」

「민폐였으려나?」

「……아뇨, 저도 한가하니까.」

내 대답이 뭐가 재미있었는지 사이온지 씨는 또 구슬소리처럼 웃었다.

「그치만, 나중에 제대로 우사미 씨한테 해명해둬야겠어~.」

「네?」

「딱히, 한 씨를 뺏어갈 생각은 아니라고 말이야.」

눈을 깜빡이는 나에게, 사이온지 씨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유로, 이틀연속 《달시계》다.

솔직히, 지갑 사정은 상당히 불안했지만――그런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게 앞의 보드에 써있는 메뉴를 들여다본 사이온지 씨가, 「한 씨의 추천메뉴는?」 어쩜 천진난만한 질문인지.

이 낡은 건물과 사이온지 아가씨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가게 문을 열었다. 딸랑, 하고 도어벨 소리가 났다.

「어서오세요―. ……어라?」

테이블을 닦던 아카이 씨가 고개를 들고, 내 모습에 밝은 목소리를 냈다가――다음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평소 인물이 아닌 것을 눈치 챘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두 분이신가요? 그럼, 이쪽으로.」

아카이 씨한테 안내받아 테이블 석에 앉는다. 평소 자리인데도 건너편에서 마주보는 얼굴이 렌코가 아니라 사이온지 씨라는 것에, 새삼 위화감을 느끼고 나는 가볍게 의자를 고쳐 앉았다.

「별일이네요. 오늘은 평소 같이 오던 분이 아니시네요?」

찬물을 가져온 아카이 씨가 그렇게 물었다. 내가 애매하게 웃자 건너편에서 사이온지 씨가 「오늘 데이트 상대는 저에요.」하고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전, 항상 마시던 걸로.」

「그럼 저도 한 씨랑 똑같은 걸로요. 아, 케이크 세트로 부탁해요.」

「가토 쇼콜라와 치즈 케이크가 있습니다.」

「치즈 케이크로~.」

「네, 알겠습니다!」

고개 숙이는 아카이 씨를 눈으로 좇으며, 「기운 찬 점원 씨구나~」하고 사이온지 씨는 웃었다. 뭐, 미나즈키 씨는 말이 없는 편이고 아카이 씨가 밝게 접객하는 것은 익숙한 《달시계》광경이다.

그리고 사이온지 씨와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 강의에 대해서나, 최근 읽은 책에 대해서. 사이온지 씨는 요즘 괴기소설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얼마 전에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과 『살육에 이르는 병』등을 빌린 영향인 것 같았다.

「아 참, 그래서 있지.」

마침 나온 치즈 케이크를 맛있게 먹으면서, 문득 떠올랐는지 사이온지 씨는 입을 열었다.

「한 씨한테, 살짝 들려주고 싶은 게 있어.」

「……저한테?」

나는 눈을 깜빡였다. 사이온지 씨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뭘까, 생각해보다가 클래스 회식 자리에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그건 이미――.

「추리소설 좋아하는 한 씨라면, 이런 이야기도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무슨 이야기인가요?」

회식 이야기는 아닌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나는 되물었다.

사이온지 씨는 장난스럽게 미소 짓고는, 아이가 간직해둔 비밀을 털어놓듯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 씨는 카라카사 요괴[각주:2], 라고 알아?」






     五


쿄코쿠 나츠히코(京極夏彦)는 나름대로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그것과 요괴 종류에 밝다는 것은 개별문제다. 미츠다신조(三津田信三)의 작품은 읽은 적도 없고, 어찌됐든 상관없지만.

쿄코쿠도(京極堂) 시리즈에 카라카사 요괴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던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한테 카라카사 요괴라는 단어를 던져주는 의미는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카라카사 요괴란, 그거 말하는 거죠? 다리가 있고, 혀를 내밀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요괴.」

「그래 맞아.」

「그게, 왜요?」

「불가사의한 이야기야~.」

사이온지 씨는 곤란한 듯이 미간을 모으고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우코가 요즘 바빠서 놀아주질 않으니까, 살짝 놀라게 해주려고 생각했어. 있잖아, 그 애, 무서운 이야기나 요괴 같은 거, 그런 거에 턱없이 약하니까.

어제, 점심 지날 때쯤에 갑자기 비가 엄청 내렸지? 요우코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러 갔으니까, 신경 쓰여서 전화했어. 우산 갖고 있니? 하고. 그랬더니 안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가져다주기로 했어.

「우산을?」

「카라카사 요괴를.」

사이온지 씨는 즐겁게 웃었다.

「우산에 있지, 살짝 장난쳤거든. 집에 있던 낡은 연보라색 우산에, 눈이랑 입을 그리고, 빨간 천으로 긴 혀도 만들어 붙였어. 접혀있을 때는 제대로 안 보이게 해서 말이야~.」

뭐랄까, 그거 엄청 수고스러울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 같은 장난이다. 사이온지 씨는 그런 걸 하는 사람이었나, 하고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아아,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급히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하고 사이온지 씨는 고개를 저었다.

「옛날에, 똑같은 장난을 했던 적이 있어. 그때 우산을 버리지 않고 남겨뒀으니까, 그걸 들고 나간 거야~.」

「옛날이라니, 언제 이야긴가요 그거?」

「초등학교 때였나~. 펼치면, 그, 우산은 버튼을 눌러서 피잖아? 그 버튼을 엄지로 눌러서 펼치면, 딱 눈앞에 혀가 떨어지는 위치에 장치한 거야. 어린 시절의 나도 참 여러 가지 궁리하면서 만들었지~ 라고 좀 그리워지곤 해.」

어쨌든 뭐, 부자가 좋은 이유다.

「그래서, 그 우산을 들고 대학까지 간 거야. 어제 오후에. 대학에서 요우코한테 그 우산을 건네줬더니, 보기 좋게 걸려서 있지~. 데롱데롱, 하고 눈앞에서 흔들리는 혀에 비명을 지른 요우코의 얼굴, 한 씨한테도 보여주고 싶었어~. 항상 침착하면서, 놀라는 점은 초등학생 때랑 전혀 바뀌지 않았다니까.」

「하아. ……혼나지 않았나요, 그거.」

「혼났어~. 『이런 우산, 쓰고 갈 수도 없잖아』하고 요우코가 뾰로통해지니까, 내 우산으로 같이 쓰고 돌아왔어.」

사이좋은 결말이지만 거기 어디가 불가사의한 이야기일까. 내가 미간을 모으자, 「불가사의는 지금부터야~」하고 사이온지 씨는 쓰게 웃었다.

「그 카라카사 요괴가 있지, 도중에 사라졌어.」

「……사라졌다?」

「역 건물에 책가게, 있지? 요우코가 사고 싶은 책이 있다고 하니까, 거기 들렸거든. 거기 안에 있는 찻집에서 차도 마셨고.」

그 서점이라면 나도 잘 이용하는 가게다. 역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서점인데, 서점의 책을 읽으면서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찻집을 함께 영업하고 있다.

「거기 우산 꽂이에 내 우산이랑, 요우코가 갖고 있던 카라카사 요괴를 꽂아두었거든. 그랬더니――가게를 나오려고 할 때 보니, 카라카사 요괴가 사라졌던 거야~.」

「하아.」

「정말로 다리가 생겨서 어디로 날아간 걸까, 하고 요우코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이상한지 사이온지 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미간을 모았다.

「……저기, 그 카라카사 우산은, 닫힌 상태에서 봤을 때는 보통 우산이죠?」

「그래~. 낡았지만, 보통 연보라색 우산.」

「그렇다면, 누가 착각해서 가져갔다거나, 도둑맞았을 뿐이 아닐까요?」

우산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의심해볼 건 그 두 가지일 것이다. 흔해빠진 우산이라면 누가 착각하거나, 아니면 그날 갑자기 내린 비였으니까 우산을 가지지 않은 누군가가 훔쳤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최소한, 우산에 다리가 달려서 달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엉뚱한 발상이 지나치다고 보는데.

「그치만, 우산꽂이에 그거랑 착각할 만큼 비슷한 우산은 없었어~. 게다가, 그 책가게 안에서 바깥 날씨는 보이지 않았고, 역 건물 안에서는 우산도 팔아. 어쩔 수 없이 우산을 훔칠 상황도 아니고, 훔칠 거라면 그 낡은 우산보다 다른 우산이었을 거야. 내 거라든가.」

그렇구나, 사이온지 씨의 반론은 일리가 있다. 우산 도둑이 있다고 해도, 일부러 서점 안의 찻집이라는 장소에서 우산을 훔칠 필요성은 없다. 착각했을 가능성도 없다면, 도대체 왜, 낡은 카라카사 요괴는 사라졌을까?

세상사에는 전부 인과가 있다. 작은 수수께끼에 직면했을 때 파트너가 자주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 우산을 들고 갔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우산을 들고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는 것이 된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앉았던 자리에 놓고 왔나 싶었지만, 요우코는 『그런 건 이제 됐어요.』라면서, 결국 그대로 가게를 나왔어~. 카라카사 요괴는 행방불명인 채.」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이온지 씨는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상담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라면 렌코가 상담해야한다. 그 파트너라면 분명, 듣자마자 사라진 카라카사 요괴의 행방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카라카사 요괴, 라고 하셨죠.」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 돌아보니, 미나즈키 씨가 그곳에 있었다. 「물 따라드릴게요.」하고 잔에 물을 채워주면서, 「실은――」하고 미나즈키 씨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이야기했다.

「그 카라카사 요괴가, 여기 왔었어요.」

 나와 사이온지 씨는 무심코 얼굴을 마주보았다.






     六


「어제 오셨을 때, 두고 간 우산이 있었던 걸 기억하시나요?」

미나즈키 씨의 말에 나는 끄덕였다. 그렇다. 어제는 가게에 들어왔을 때 아카이 씨에게 비에 대해서 질문 받고, 누군가가 두고 간 우산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가게 입구를 바라보았다. 맑게 갠 오늘도 우산꽂이는 놓여있었는데, 그곳에는 어제 있던 연보라색 우산은 없었다. ――연보라색?

「그럼, 그 우산이?」

「네, 손잡이에 이름이 써있지 않을까 확인하려고 펼쳤는데, 깜짝 놀랐어요. 불쑥 혀가 튀어나오기에.」

미나즈키 씨는 쓴웃음 지었다. 미나즈키 씨의 놀란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상상해보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카이 씨라면 용이하게 상상할 수 있지만.

「어머나, 틀림없이 그거야~.」

「그렇군요…… 곤란하게 됐네요.」

미나즈키 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왔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지금은 이미, 카라카사 요괴는 여기에 없다는 건가.

「오늘 점심 조금 전에, 어제 그 우산을 놓고 갔던 손님이 오셨어요.」

「돌려드렸나요?」

「네, 그분이 자기 것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설마 다른 분 것인 줄은 모르고…… 정말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미나즈키 씨에게, 「아뇨,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하고 사이온지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을 의심할 이유는 그쪽에게 없는걸요.」

「아뇨, 정말로 죄송합니다.」

한 번 더 고개를 숙이는 미나즈키 씨.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이나 연락처는 모르시나요?」하고 물어보았지만, 미나즈키 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그건 어쩔 수 없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은 지나가는 손님에 지나지 않으니까, 개인정보를 미나즈키 씨가 파악해두는 게 이상하다.

「어떤 사람이었나요?」

「두 분이랑 동년배 여성이었어요. 오늘은 엄청 미안해하시면서 오시고, 이쪽에서 우산을 돌려주니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면서 돌아가셨어요.」

눈썹을 찌푸린다. 왠지 점점 기묘한 이야기가 된다.

「그럼, 마스터. 어제 그 손님이 온 건 세 시 지났을 때였죠.」

「네, 세 시……아마, 삼십오 분쯤이었어요.」

「사이온지 씨, 콘노 씨랑 그 서점 찻집에 있던 시간은요?」

「세 시전쯤이었나~. 역 건물을 나온 건 세 시 반쯤 지나서였나? 그때는 이미, 비는 그쳤어.」

비가 그친 건 세 시 반쯤이다. 그리고 역 건물에서 이 《달시계》까지는 도보로 약 십 분쯤 될까. 그렇다면,

「그럼, 여기에 카라카사 요괴를 두고 간 분――K씨로 할게요. K씨는, 세 시쯤에 역 건물의 찻집에서 카라카사 요괴를 다른 우산이랑 착각했는지, 훔쳐가든지 했다. 그리고 빗속, 카라카사 우산을 들고 《달시계》까지 왔다, 라는 거군요. 세 시 십오 분쯤이면, 아직 비가 내리던 도중일 테니까요.」

「그렇구나~. 그치만, 그 우산이 카라카사 요괴라는 것,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거야. 착각해서 가져갔다면 그 시점에서 깨닫고 찻집으로 돌아왔을 테니까.」

「깨달았지만 돌아갈 여유가 없었다……라는 것도 아니겠군요. 그렇게 급하게 간 곳이 《달시계》라니―― 마스터, K씨는 여기서 누구랑 만났나요?」

「아뇨, 계속 혼자였어요. 살짝, 초조했던 것 같긴 하지만.」

미나즈키 씨의 대답에, 나는 끄덕였다.

「사이온지 씨, 그 우산은 닫혀있으면 평범한 연보라색 우산인 거죠.」

「응, 맞아~.」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카라카사 요괴를 갖고 싶었다……는 것도 아닐까요. 콘노 씨는 대학에서 역 건물까지 계속 카라카사 요괴를 닫은 채 갔나요?」

「응, 엄청 창피하다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콘노 씨와 동감이다. 역시 카라카사 요괴를 펼치고 거리를 걷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보통 생각이겠지만, K씨는 그 카라카사 요괴를 펼치고 역 건물에서 《달시계》까지 약 십 분을 걸어온 뒤, 두고 간 그것을 오늘에서야 다시 가져갔다.

만에 하나, 초등학생 시절에 사이온지 씨가 장난삼아 만들었던 카라카사 요괴가 이 세상에 두 개 있을 가능성은 배제해도 되겠지. 일단 사이온지 씨에게 확인해보지만, 역시 사이온지 씨가 만들었던 카라카사 요괴는 이 세상에 한 개밖에 없다고 한다.

K 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카라카사 요괴를 펼친 채로 《달시계》까지 온 것일까. 훔친 우산을 이곳에 방치해두었으면 또 모르지만, 멀쩡히 회수까지 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떨렸다. 화면을 바라보자 렌코의 이름이 보인다. 사이온지 씨와 미나즈키 씨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손님이 없다고는 해도, 조용한 가게 안에서 통화는 나도 피하고 싶다.

가게 밖으로 나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 메리?』하고 파트너의 경박한 목소리가 바로 늘려서, 나는 무심코 한숨을 쉬었다.

「그래그래, 나 메리.」

『친애하는 파트너한테 갑자기 한숨은 너무하지 않아??』

휴대 전화 너머에서 뺨을 부풀리는 파트너의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작게 웃었다.

「시험은 끝났어?」

『그야 퍼펙트지.』

「성적우수라 부럽네.」

『근데, 메리, 지금 어디야?』

「달시계.」

『어머, 어제에 오늘까지? 별일이네.』

「사이온지 씨랑 데이트야.」

일순 전화 너머에서 파트너가 말을 삼킨, 기분이 들었다.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인기쟁이구나, 메리.』

「덕분에.」

『그럼, 그 데이트 방해하러 가볼까.』

뭐야 그게. 나는 전화 너머의 렌코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일부러 당사자한테 양해를 구하는 방해자가 어디 있어?」

『우사미가는 항상 정정당당하게가 가훈이거든. 어차피 질투할 것이라면 질투도 당당하게.』

나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질투?

「렌코?」

『달시계지. 십 분이면 가니까 기다려.』

「아, 잠깐――.」

전화가 끊어졌다. 조용해진 휴대전화를 내려 보면서,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항상 그렇지만 나를 이상한 말로 휘두르지 말아줬으면 한다. 렌코의 말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그 경계는 내 눈으로도 보이질 않으니까.






     七


평소대로, 렌코는 약속보다 이 분 이십 초 정도 늦게 나타났다.

이럴 때까지 틀림없이 늦다니, 역으로 성실하다고 할만하다. 본인은 변함없이 오 분 이내는 오차범위라고 떳떳해하지만.

「카라카사 요괴 절도?」

테이블 석에 의자를 끌어다가 핫 커피를 주문한 파트너는, 예상대로 그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이때까지의 경위를 내가 간추려서 설명했다.

역 건물의 찻집에서 사라지고 《달시계》에 나타난 카라카사 요괴.

또 사라진 요괴는 지금 어디를 방황하고 있을까.

「역 건물 책가게 안에 있는 찻집이라면, 사이온지 씨. 소파 석에 앉으셨나요?」

「응 맞아~. 벽 쪽에 있는 자리. 내가 소파 측에 앉았어.」

그 찻집에 대해서는 나도 바로 떠올랐다. 벽 쪽에 소파형의 의자가 놓여있고, 그곳에 2인용의 테이블이 늘어서있다.

「그때 옆자리에 누가 앉았나요?」

「옆자리? 손님은 또 있긴 했는데, 거기까진 잘 모르겠어~.」

흠, 하고 렌코는 생각에 빠졌다. 역시 렌코에게는 세상의 구조가 보이는 모양이다.

「그 카라카사 요괴는 펼치면 혀가 튀어나오게 만들었단 말이죠.」

「그래~. 이렇게 펼치면, 눈앞에 불쑥, 하고.」

사이온지 씨가 우산을 머리 위에서 펼치는 동작을 취했다.

「근데 카라카사 요괴는 원래 닫힌 우산 모습이지 않아요?」

「초등학생 때 만든 거니까, 세세한 건 신경 쓰지 마~. 요우코를 놀라게 하려고 만든 거니까.」

렌코의 태클에, 사이온지 씨는 곤란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카라카사 요괴 자체도 사람을 놀래기만 하는 요괴였던가. 유명한 측에서도 위험도가 낮은 요괴였다.

지금 나는 놀라지는 않지만, 작은 수수께끼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카라카사 요괴의 소행이라면야, 무해한 요괴니까 웃어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면――이건 현장에 가볼 필요가 있겠죠?」

「현장?」

「처음으로 우산이 사라진 현장. 역 건물 서점의 찻집. ――범인은 현장에 돌아오는 법이니까.」

나는 사이온지 씨와 마주보았다.

「범인이라니――K 씨?」

「아니아니, 이 경우에 범인은……음, 카라카사 요괴 자체겠지?」

그렇게 말하고, 렌코는 카운터에 있던 미나즈키 씨를 불렀다.

「네.」

「아, 마스터. 일단, 알려드리고자 해서.」

「네?」

「아마, 여기 손님 중에 우산 도둑은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그 순간, 여우한테 홀린듯한 미나즈키 씨의 표정은 신선했다.



그리고 삼십분 후.

나와 렌코, 사이온지 씨 세 명은 역 건물의 서점으로 왔다.

신간 진열대에 가득한 표지들에 눈을 빼앗기지만, 지금의 목적은 책을 사는 것이 아니다. 무심코 발을 멈췄지만, 렌코가 불러서 나는 아쉬움을 남기고 진열대를 뒤로한다.

찻집은 가게 내부의 한 편을 개조해 영업하고 있다. 계산대에 가져가기 전에 커피를 마시면서 읽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역시 손님으로서도 서서 읽으면서 진열대 앞을 차지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렌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슬슬 알려주지 않을래?」

「그건,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칫칫, 하고 손가락을 까닥이고는, 파트너는 찻집 계산대로 걸어갔다. 점원이 우리를 돌아보고 「어서오세요, 세 분이신가요?」하고 말을 걸었다.

「아뇨, 실례합니다. ――여기 어제, 연보라색 우산을 놓고 가지 않았나요?」

렌코의 말에, 점원은 곰곰이 생각했다.

점원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하고 근처에 있던 점원과 무언가 얘기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돌아왔다.

그 손에는 낡은 연보라색의 우산이 들려있다.

「……혹시, 이 우산 말씀이신가요?」

「사이온지 씨, 이게 맞나요?」

렌코가 사이온지 씨를 돌아본다. 앞으로 걸어 나간 사이온지 씨는 받아든 우산을 만지작거리고는 후우, 하고 숨을 토했다.

「확실히, 이거야~」

「어, 그럼 그 우산이――.」

「내가 만든 카라카사 요괴야, 틀림없어~」

사이온지 씨는 그 자리에서 우산을 머리 위로 올리고는, 펼쳤다.

――불쑥, 하고 내 눈앞에 빨간 혀가 떨어진다. 연보라색 우산살에 그려진 커다란 눈 하나와 꿰매서 고정된 빨간 천의 혀. 이랬구나, 이건 역시 카라카사 요괴다.

하지만, 《달시계》에서 사라진 카라카사 요괴가 왜 이곳에 돌아온 걸까?

「저기, 이 우산 혹시, 오늘 비슷한 우산을 찾으러 온 사람이 또 있었나요?」

「예? ……아, 네, 그렇긴 하지만.」

「그 사람이 찾던 우산은 찾았나요?」

「……아뇨.」

렌코의 말에 점원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렌코는 끄덕이고 카라카사 요괴를 닫은 사이온지 씨를 돌아보았다.

「사이온지 씨. 콘노 요우코 씨를 여기로 불러주시겠어요?」

「요우코를?」

「아마, 콘노 씨가 가지고 있는 우산을 찾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모자를 눌러 쓰며 웃는 파트너의 말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마주보았다.






     八


「요악하자면, 단순한 착각이었어.」

콘노 씨의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파트너는 그렇게 말했다.

「사라질 이유가 없는 것이 사라졌다면, 전제가 틀린 거야. 우산은 사라질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우산이 사라진다면, 제일 먼저 의심해볼 건 착각해서 가져간 경우지.」

「하지만, 우산꽂이에서 이 요괴랑 헛갈릴만한 우산은 없었는데~?」

「그렇기 때문이에요. 닮은 우산이 우산꽂이에 없었으니까 착각했다, 는 거죠.」

사이온지 씨의 반론에 파트너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이온지 씨와 몇 번째인지, 마주보았다.

파트너는 하나에 백 엔짜리 쿠키를 우물거리면서 작게 웃었다.

「우산꽂이에 우산을 놓는 건 의무가 아니야. 테이블까지 우산을 들고 오는 사람도 있잖아. 그러는 게 도둑맞거나 하는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 카라카사 요괴는, 닫힌 채로는 흔한 연보라색 우산. ――달리 비슷한 우산을, 테이블까지 들고 온 사람이 있었다면.」

――아아, 그런가, 그렇구나.

「테이블에 우산을 두고 갔지만, 우산꽂이에 똑같은 연보라색 우산이 있었으니까 착각했다?」

「그런 거야.」

그렇구나, 그러면 납득이 간다. 콘노 씨가 우산꽂이에 두고 간 카라카사 요괴는, 그 때문에 사라진 건가.

「――그치만, 이 카라카사 요괴는, 아까처럼 펼치면 바로 알잖아. 그렇다면, 역 건물을 나간 시점에서 눈치 채고 돌아가는 거 아니야?」

나는 반문했다. 그래, 문제는 그 점이다.

K씨가 우산을 착각했더라도, 왜 카라카사 요괴를 든 채로 《달시계》까지 간 것일까. 설마 눈치 채지 못했을 리도 없고――.

「그야, 《달시계》까지 눈치 채지 못했으니까 아니겠어?」

내 예상과 달리, 렌코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어?」

「눈치 채지 못했을 수 있지. 그 카라카사 요괴의 구조적으로.」

사이온지 씨가 앉은 의자에 놓여있는, 카라카사 요괴를 지적하면서 렌코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이온지 씨, 그거 우산을 머리 위에서 펼치면 숨은 혀가 튀어나오는 구조라고 했죠?」

「그래, 맞아~」

「그러면, 이렇게.」

렌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라카사 요괴를 손에 들고, ――우산을 아래로 향했다.

「우산을 아래로 향하고 펼치면, 일단 혀는 보이질 않지. 밑으로 향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펼친 우산을 휙 하고 힘차게 들어 올리면――혀는 뒤로 감아 올라가서, 보이지 않아.」

이 자리에서 펼칠 수는 없지만, 하고 렌코는 쓰게 웃었다. 우산을 사이온지 씨에게 돌려주었다.

나와 사이온지 씨는, 기가 막히거나 감탄 같은 한숨을 토해냈다.

「……K 씨는 그 상태로 눈치 채지 못하고, 빗속을 걸어갔다고?」

「그리고, 《달시계》근처에서야 겨우 깨닫고, 당황해서 아무 건물이나 뛰어든 거야, 분명. 다른 사람의 우산을 실수로 가져와버렸다, 돌려주러 간다고 해도 이런 카라카사 요괴를 쓴 채로, 역 건물까지 돌아가는 것도 창피하다――그래서, 《달시계》에서 시간을 죽인 게 아닐까? 비가 그칠 때까지.」

「하지만, 그러면 왜 《달시계》에다가 카라카사 요괴를 두고 간 거야?」

「그건 정말로 까먹은 거예요. K 씨는 상당한 덜렁이 같아 보이고.」

마치 그 K 씨를 아는 것처럼 렌코는 말했다.

나는 의심스럽게 눈을 가늘게 뜬다. ――뭔가 이상하다.

그러는 동안 사이온지 씨가 뭔가를 깨닫고 손을 마주쳤다. 그 시선 앞을 보자, 연보라색 우산을 손에 든 콘노 씨가 찻집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 K 씨의 실수에 콘노 씨가 휘말린 것으로, 이중 착각이 성립하는 거야.」

「……이중?」

콘노 씨가 우리들 자리로 찾아와, 몹시 부끄럽게 인사했다. 우리들도 인사를 돌려준다. 사이온지 씨가 카라카사 요괴를 내밀자, 콘노 씨는 굉장히 쩔쩔매는 모습으로, 자기가 들고 있는 연보라색 우산을 내려 보았다.

「저기…… 유코, 그, 미안해.」

「후후, 요우코도 참. 신경 쓰지 마.」

소꿉친구끼리는 이미 통했는지, 미안해하는 콘노 씨에게 사이온지 씨는 다정하게 웃었다. 이래서는 나 혼자만 영문도 모른 채 아닌가.

「그러니까. 어제, 사이온지 씨랑 헤어진 후에, 콘노 씨는 여기로 돌아온 거야. 혹시 우산꽂이가 아니라, 내가 앉은 자리에 두고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점원한테 물었겠지. 『자리에 연보라색 우산이 떨어져있지 않았나요?』하고.」

「……그래서 점원이 보여준 건, K 씨가 잃어버린 보통 우산이었다?」

「그런 거야.」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겨우 나도 상황을 이해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어제 세 시쯤, 이 가게에는 똑같은 연보라색 우산을 든 콘노 씨와 K 씨가 있었다. K 씨는 테이블에, 콘노 씨는 우산꽂이에 우산을 두었지만, K 씨는 테이블에 있는 우산을 까먹고 우산꽂이에 콘노 씨의 우산을 들고 가버렸다.

우산꽂이의 우산이 없어졌다고 안 콘노 씨는 한번 가게를 나갔다가 돌아와서, K 씨가 까먹고 간 우산을 받았다. 카라카사 요괴는 접으면 평범한 연보라색 우산이니까 받았을 때도 콘노 씨는, 설마 이게 카라카사 요괴가 아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때는 비도 멈췄으니, 밖에서 카라카사 요괴를 펼치는 건 부끄러웠으니까, 눈치 채지 못하고 돌아갔다.

한편, 우산을 착각한 채로 《달시계》까지 와버린 K 씨는, 잃어버린 자기 우산을 되찾고자 《달시계》에서 이 가게까지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K 씨의 우산은 이미 콘노 씨가 가져가버린 뒤고, 게다가 K 씨는 카라카사 요괴마저 《달시계》에 두고 와버린 것이다.

그리고 오늘 오전, K 씨는 《달시계》에서 카라카사 요괴를 돌려받고 이 가게로 또 왔다. 자기 우산을 가져간 누군가가, 착각했다고 깨닫고 돌려주러 오지 않을까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콘노 씨는 아직 우산을 돌려주러 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K 씨는 카라카사 요괴만 점원에게 맡겼겠지.

이렇게, 이중 착각에 의해 두 우산은 돌고 돌아서 또 이 장소에 돌아왔다.

이제 콘노 씨가 가져간 우산만 K 씨에게 돌려주면 완벽한데――.

「오, 왔다.」

이번에는 렌코의 목소리. 돌아보자, 또 입구에서 보브컷의 여성이 점원과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다. 렌코가 손을 흔들자, 그 여성은 이쪽으로 달려와――콘노 씨가 손에 든 연보라색 우산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앗, 내 우산!」

어안이 벙벙한 콘노 씨의 손에서 연보라색 우산을 받아들고, 그 사람――K 씨는 행복하게 뺨에 비볐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답도 듣지 않고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는 K 씨.

뭐, 내 주변에는 항상 그렇긴 하지만, 역시 마이페이스인 사람인 모양이다.

「저, 카사하라 타카라(笠原たから)라고 합니다. 어제는 그 우산, 그 멋진 카라카사 요괴를 맘대로 가져가서, 정말 죄송했어요~.」

「……머, 멋지다구요?」

「네, 엄청! 저는, 제 우산이 카라카사 요괴가 된 줄 알고 감동했어요! 그치만, 잘 보니 제 우산이 아니라고 눈치 채서~.」

사이온지 씨가 뿜듯이 웃고, 콘노 씨는 멍하니 K 씨――카사하라 씨를 보았다.

「제 우산도 카라카사 요괴가 돼 주지는 않을까요~.」

카사하라 씨는 자기 연보라색 우산을 쓰다듬으면서 사랑스럽게 웃었다.

――특이한 사람이다. 아니, 좀 이상한 사람 같은데?

카사하라 씨의 모습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역시 실례니까 말하진 않는다.






     九


상황이 정리되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우산이 필요 없는 날씨였다.

하늘의 푸름에 비해 차가운 바람에 몸을 떨면서, 나는 곁을 걷는 렌코를 보았다.

「근데, 렌코.」

「응?」

「――그 카라하사 씨, 렌코가 아는 사람이지?」

그 말에, 렌코는 「들켰나.」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그래도 타이밍이 너무 좋았어. 메일 같은 걸로 부른 거지?」

「오늘, 그녀랑 똑같은 시험 치렀거든. 그래서 카라카사 요괴 얘기도 들었고. 깜짝 놀랐어.《달시계》에서도 그 얘기를 들을 줄은.」

알고 나면 맥 빠질 정도로 단순한 이야기인 건, 뭐든 마찬가지다.

렌코가 세상의 구조를 전부 간파하는 것도, 어쩌면 쓸데없이 넓은 인맥이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그것대로 렌코의 능력이지만.

「여전히, 렌코의 지인은 마이페이스인 사람들뿐이구나.」

「그야, 친애하는 파트너가 마이페이스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쓸데없는 되받아치기. 그도 역시 우리들의 일상이다.

나는 숨을 내쉰다. 바람은 아직 차갑고, 이제부터 봄방학이라고는 해도 봄은 아직 조금 멀리 있다.

봄방학이 끝나면 우리들도 2학년. 끝나고 보니 많은 일이 있었던 1학년도 눈 깜짝할 사이에 과거가 됐다.

이 파트너와 만난 이 1년,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아니, 생각해봤자 쓸데없다.

내가 있는 곳은, 우사미 렌코와 만나서 《비봉클럽》을 결성한 현재니까.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이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지금밖에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부터 계속되는, 렌코와 함께하는 미래밖에는 없다.

――그것이, 지금의 나, 마에리베리・한의 세계다.

「저기, 렌코.」

「응?」

「……아무 것도 아니야.」

고개를 저으면서, 문득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보내지 않았던 메일을 보냈다.

클래스 회식을, 불참가한다는 내용.

클래스메이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내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니다.

「렌코, 봄방학, 어디 갈래? 여비는 적으니까, 그렇게 먼 곳은 사양하고 싶지만.」

휴대전화를 닫고 나는 렌코에게 웃었다.

렌코는 한 번 눈을 깜빡이고는, 모자를 고쳐 쓰면서 싱긋 고양이 같은 미소를 띠었다.

「어디라도 즐거울 거야. 메리랑 함께니까.」




그래, 이 파트너의 곁이, 내가 있을 곳.

《비봉클럽》은, 둘이서 하나인 오컬트 서클이니까.

봄방학도, 앞으로도, 내 대학생활은 이 파트너와 함께해나간다.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은 그저 기쁘다.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 것도 벌써 7개월만입니다─!
아니 애초에 이 시리즈 단편 자체를 쓰는 것도 7개월만이기(생략)

어쨌든, 창상화에서는 오랜만에 《소녀비봉록》입니다.
아니, 동인지 쪽으로 계속 썼으니까 제 감각으로는 전혀 오랜만이 아닙니다만…….
그쪽으로 두 편 (세 편?) 계속 긴 이야기를 써왔으니까 단편으로 재활 겸으로 썼습니다. 역시 이게 평소의 소녀비봉록이군요, 음.
아, 코가사 이야기인데도 사이온지 씨랑 콘노 씨가 메인 같은 건 태그대로입니다.



  1. 子供は風の子:추운 날에도 활기 넘치는 아이들을 일컫는 일본 속담. 국내속담으로는 ‘아이와 장독은 얼지 않는다.' [본문으로]
  2. 츠쿠모가미의 일종, 우산이 요괴화된 경우를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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