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의 정원

 

 

原作者 : 浅木原忍 (http://r-f21.jugem.jp/)
原題 : 睡蓮の底
(http://coolier.sytes.net:8080/sosowa/ssw_l/?mode=read&key=1263481192&log=97)
그림 : MEMO
번역 : 선배
작품 태그 : 비봉클럽, 명련사…같은 오리캐 있음, 메인은 무라사와 누에




















 

















  

※『2085년 야구』에 등장했던 두 사람이 나옵니다.

그쪽을 먼저 읽었다면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만,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마…….












제 기억은 캄캄하고 차가운 밤바다에서 시작합니다.

시야는 계속 흔들흔들, 흔들흔들 불안정하게 요동칩니다. 저는 미덥지 못한 작은 고무보트 위에서, 밤을 토해내는 것 같은 새까만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다가 파란 이유는 하늘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파랗고 맑은 바다가 아니라 그때의 검은 바다를 떠올렸습니다.

별도 달도 없는 밤이었습니다. 그저 암흑만이 수평선 너머까지 한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한한 고독 속에서 저는 그저, 여동생의 몸을 끌어안았습니다.

동생은 제 품에서 흠뻑 젖은 채로 작게 떨고 있습니다.

미나미 언니, 하고 새파란 입술이 제 이름을 공허하게 불렀습니다.

유에, 하고 저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고, 그 차가운 몸을 꼭 껴안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지켜야만 해.

언니로서――이 자그마한 동생을 지켜야만 해.

우리들을 집어삼키려는 이 압도적인 어둠 속에서.

내가 지켜야만 한다고,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계속, 계속.

그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네, 그래요.

제게 그 수난사고 이전의 기억은 없습니다.

저는 다섯 살이었고 동생은 세 살이었습니다. 사고 당시 쇼크로 인한 일시적인 기억상실이라고 진단받았던 것 같습니다만, 결국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일가족이 왜 그 배를 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빚이라도 져서 도망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죠.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건, 이미 결론지었습니다. 그저 그런 것일 뿐이라고. 어차피――당신들은 어떤가요?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나요? ――그렇죠. 그 정도로 어린 시절 일들은, 잊어버리는 게 보통이에요.

그 사고 직후, 초등학생이 될 즈음의 제가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습니다. 네―― 모두가 지나가버린 일. 지금의 제게는, 가족을 잃어버린 다섯 살 그 밤 이전의 기억은 떠올리지 못한다는, 그저 그 뿐인 사실입니다.

결국 이렇게, 저와 동생 유에는 그렇게 천애고아인 몸이 되었습니다. ――…….







      一 / 무라타 미나미(村田美波)


어머, 손님이신가요?

여기 손님이라니 별 일이네요. 거기다 두 분이나.

아아, 세이 씨랑 나츠리 씨 친구인가요, 그렇군요.

안녕하세요. 수련의 정원(睡蓮の庭)에 어서 오세요.

저는 무라타 미나미라고 합니다.

우사미 씨랑――어어, ……메리 씨, 로군요.

별 것 없는 곳입니다만, 부디 편히 계시길.

세이 씨, 나츠리 씨.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우사미 씨랑 메리 씨에요.

――죄송해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차라도 내올 테니까.

녹차로 괜찮나요? 그래요.

근데, 두 분은 세이 씨와 나츠리 씨랑 어떻게?

――아아, 야구. 코시엔에서 만났군요. 그러면 두 분도 한신 팬?

아뇨, 저는 별로. 그냥 주변에 팬이 있으니까요, 야구는 잘 몰라요.

그래요, 세이 씨의 초대로. 나라 관광 겸해서요? 즐거우셨나요?

그거 다행이네요.

네? 아아, 아뇨, 제가 스이렌(睡蓮) 님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여기 주민이에요.

스이렌 님은 외출하셔서, 저녁쯤에 돌아오실 것 같아요.

――스이렌 님에 대해서 아시나요? 세이 씨한테서 들으셨군요.

네, 여긴 스이렌 님이 운영하시는 작은 고아원 같은 거예요.

스이렌 님은――네, 스이렌은 본명이 아니세요. 렌쇼 히지리(蓮沼聖)가 본명이시지만, 저희들은 모두 스이렌 님이라고 불러요.

아, 마침 저기 보이죠?

이 집의 상징이기도 한, 수련 연못이에요.

아직 피지 않았지만, 여름 때가 되면 멋지고 탐스럽게 펴요.

이 집을 짓기 전부터 저 연못이 있었는데, 그게 여기를『수련의 정원』이라고 이름붙인 유래에요. 그리고 스이렌 님이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도.

아아, 세이 씨, 나츠리 씨. 손님이 기다려요.

아뇨, 괜찮아요. 그럼 전 이만. 정원 청소하러 가볼게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우사미 씨, 메리 씨, 편히 쉬세요.






      二 / 코비 세이(虎尾星)


아아, 우사미 씨, 메리 씨. 두 분 다 잘 와주셨어요.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근데,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 여기까지 애써 와주시다니.

――아아, 사원 견학이요? 그렇군요.

그다지 유명한 사원도 없지만요.

네, 여긴 뱌쿠렌사(寺)의 시설로서, 『수련의 정원』이라고 해요.

집에 불행이 있어서 돌봐주는 사람 없는 아이들을 데려 오거나, 집에서 보육원처럼 맡기기도 해요.

저와 나츠리는, 여기 직원이에요. 보육사 겸 사무원이죠.

선대 주지이신 묘렌 님이 오십 년 정도 전부터 시작한 시설이고, 지금은 당대 주지이신 스이렌 님이 여기 이사를 겸하고 계세요. 아아, 저랑 나츠리는 스님이 아니에요. 불문에 귀의하고는 있지만.

방금 분 말인가요? 미나미 씨에요.

그녀는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스이렌 님이 거두신 분이에요.

벌써 십 년 이상이나 동생 분이랑 여기서 지내고 계셔서, 스이렌 님을 제외하면 여기서 제일 고참이죠.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그녀를 찾아가는 게 제일 확실해요.

――착각하다뇨, 나츠리!

아, 아무리 저라도, 이 집 화장실을 잘못 가르쳐주지는――.

……윽. 화, 확실히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그치만, 옛날이야기라구요!

크흠. 어쨌든, 아무 것도 없는 곳이지만, 편히 쉬세요.

사원으로 가실 거면 안내해드릴 텐데. 네, 지금부터도 상관없어요.

――저 혼자로도 괜찮으니까, 나츠리는 일이나 하세요.

괜찮다니까요! 진짜.

아아, 유에 씨. 돌아오셨나요. 어서 오세요.

여긴 손님이신――어머나. 죄송해요, 말 수가 적고 낯가림이 심한 아이라서.

그녀는 무라타 유에 씨. 네, 아까 무라타 미나미 씨의 동생이에요.

미나미 씨는 봄부터 대학생이에요. 유에 씨는 두 살 밑이라, 봄부터 고등학교 2학년이구요.

그밖에 여기서 지내는 아이들은 몇 명 있는데, 스이렌 님은 그 아이들 모두의 어머니를 대신하고 있죠.

 

네, 스이렌 님은 멋지신 분이에요. 저도 애초부터 종교하고는 연이 없이 지냈는데, 이렇게 불문에 귀의하고 여기서 일하는 것도, 스이렌 님과 만나고 부터에요.

아아, 아뇨, 별로 권유하는 게 아니라. 죄송해요.

저녁이면 스이렌 님이 돌아올 테니까, 스이렌 님에 대해서는 그때라도.

그럼, 사원으로 가볼까요.


      ※ ※ ※


――네, 그래요.

가족도 기억도 한꺼번에 잃은 저와 여동생 유에를 돌봐주신 분이, 스이렌 님이에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족이 없어서, 우리들을 거둬줄 친척도 없었던 모양이에요. 당시에는 아직 막 생긴 이 수련의 정원에 받아주셨답니다.

우리들 외에도, 보호자가 없는 가정 사정 때문에 맡겨진 아이들이 있어요. 지금은 모두들 먼저 독립해버려서, 저희들이 가장 고참이지만요.

이제 잘 기억도 안 납니다만, 기억을 잃고 기댈 곳도 단 한 명, 여동생밖에 없는 저로서는 스이렌 님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커다란 구원이었을까요.

당시 스이렌 님은 아직 비구니로서 수행중인 몸이었지만, 바쁘신 묘렌 주지님을 대신해서 수행 틈틈이 이 시설의 관리를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시설을 맡고 있던 직원 분들――아아, 세이 씨들 전에 분들이에요, 그 분들보다도 스이렌 님을 훨씬 존경했던 것 같아요.

스이렌 님은 항상 다정하시고, 누구라도 차별 없이 대해주시는 분이에요. 설령 상대가 어린 아이일지라도 똑같은 눈높이에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가족처럼 대해주는 그런 분이에요.

아이는 상대방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민감해요. 스이렌 님이 우리들 편이라고 저도, 아마도 유에도, 모두가 느꼈을 겁니다.

어찌 보면 친어머니보다도 스이렌 님이 저희들의 어머니 같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친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는 제가 말해봤자, 어쩔 수 없지만요.――……






      三 / 무라타 미나미


유에, 유에.

아아, 여기 있었구나. 어서 와.

손님이 오셨어. 세이 씨랑 나츠리 씨의 친구라나 봐.

어머, 유에도 만났어? 그래, 우사미 씨랑 메리 씨말이야.

메리 씨 예쁜 금발이었지. 근데 외국 사람이면서도 일본어를 엄청 잘하셔. 유학생인가 뭔가 싶었는데, 일본에서 태어난 걸까.

야구시합에서 만났나봐. 지금쯤 야구 얘기로 한창 시끄럽겠지.

……유에.

그거 또 만드는 거야?

아니야. 괜찮아. 유에가 만들고 싶다면.

………….

저기, 아직 화났니?

내가 여기 남기로 해서……그렇게, 싫었니.

있지, 유에. 나는 여기가 좋아. 스이렌 님은 친절하고, 세이 씨도 나츠리 씨도 좋은 사람이야.

게다가, ――유에를 내버려두고 혼자서 살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다니지 못할 정도로 먼 대학도 아니니까.

우리들, 단 한 명뿐인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유에.


……미안해.

저기, 유에. ――나, 싫어?

………….

미안해, 이상한 말해서.

그래도, 유에.

나는 유에를 항상,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건 당연한 거야――그러니까, 유에.

유에가 대학에 들어가서, 혼자 산다면 말리지 않을게. 따라가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그때까지는 나, 유에 곁에 있고 싶어.

……부탁이야, 유에.


 ――――。

아아, 나츠리 씨. 깜짝 놀랐어요.

미안해요, 잠깐 멍하니 있었나 봐요.

괜찮아요, 몸이 나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

――보셨나요. 역시 나츠리 씨는 속일 수 없네요.

저……유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요즘 모르겠어요.

제가 독립한다고 해서 화난 거면 알겠어요. 하지만, 여기 남는다고 해서 화내는 심정은 모르겠어요. ――저는, 유에한테 그렇게 미움 받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유리병 배.

그 애도, 우리들이 이렇게 된 이유를 잊었을 리가 없는데.

왜 그런 걸, 열심히――.

……미안해요, 나츠리 씨한테 얘기해봤자 어쩔 수 없는데.

아뇨,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스이렌 님한테도, 쓸데없이 걱정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분명 조만간 유에도 이야기해줄 거예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희들은, 피가 이어진 단 한 명뿐인 자매니까요.






      四 / 노하라 나츠리(野原夏莉)


여, 어서 와.

사원은 어땠어? 너희들한테 뭔가 재밌는 거라도 있었나.

아아, 꽤 무서운 스님이 있었지. 운카이(雲海) 씨라고 해. 그래보여도 우리들보다 네 살 위야. 그렇게는 좀 안 보이지? 내가 처음 만났을 때는, 무심코 스이렌 님 선대 주지님이라고 생각했어.

산린(三輪)씨도 만났구나. 운카이 씨 여동생이야. 안 닮았지?

뭐, 형제란 그런 거겠지. 미나미랑 유에도 그렇게 안 닮았고. 우사미 씨랑 메리 씨는? 외동인가. 나도 그렇지만.

선배는 길도 안 잃어버리고 물건도 안 떨어트리고 무사히 안내했어?

그래, 그거 다행이네. 참 잘했어요, 쓰다듬어 줄게 이리 와.

――미안미안, 아프다니까 선배.

스이렌 님? 아직 안 오셨어.

슬슬 돌아오실 시간이지만――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모두의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네.

어서 오세요, 스이렌 님. 고생하셨어요.

아아, 여기는 저랑 선배의 친구, 우사미 씨랑 메리 씨라고 합니다.

네, 애써 교토에서 뱌쿠렌사를 견학하는 겸해서 여기로 놀러왔어요.

――이런이런.

그래, 방금 분이 스이렌 님. 뱌쿠렌사의 지주고, 이 시설의 이사를 겸한, 모두의 어머니를 대신하시는 분.

어때, 첫인상을 물어도 될까.

――아름다우신 분이라. 뭐, 확실히 그렇게 표현하는 게 제일 적절하지.

선배도 상당한 호인이지만, 저 사람은 그런 걸 초월한 밑도 끝도 없는 선인(善人)이야. 뭐랄까, 나는 어느 쪽이냐면 성악설을 지지하지만, 스이렌 님을 보고 있자면 성선설을 믿게 될 것 같으니까 무서울 정도지. 어쨌든 저 사람에게는 악의가 없어. 누구를 대하더라도 자비롭고, 곤경에 처한 사람은 내버려두질 못해, 뭐 「선인」이라는 말에서 상상하듯이 인품을 전부 모아서 뭉쳐놓은 것 같은 사람이야.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 또 무섭지.

아아,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뭐, 어쨌든 스이렌 님이 친절을 베푼다면 솔직하게 받아들여도 돼. 뻔한 가식이나 이해타산 따윈 일절 없는 사람이니까.

그나저나, 아마도 너희들한테 오늘은 자고 가라고 그럴걸?

아마도 저녁 식사 후에 그렇게 말할 테니까, 뭐, 각오해두라고.


      ※ ※ ※


――수난사고 말인가요?

아뇨……실은 저, 그 사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요.

큰 여객선사고 같은 게 아니라, 작은 배의 전복사고라고 해요. 배에 탄 사람들 중에 살아남은 건 저와 유에 단 둘뿐이었다는 건 확실해요.

모두들 구명보트에 탈 틈도 없이 바다에 빠졌고, 우리들은 어쩌다가 배에서 떨어진 보트가 근처에 떠다녀서, 그걸 붙잡고 살아남은 게 사실이라나 봐요. 다섯 살인 제가 유에를 안고 바다 속에서 자력으로 보트에 올라갔다니 믿기지 않지만, 살아남은 사람이 저와 유에 뿐이었으니까, 그것이 사실이겠죠. 위급 시에 발휘하는 초인적인 힘, 같은 것일지도 모르고요.

저는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었지만, 유에가 같이 있었기에 제가 무라타 나츠미라고는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저 혼자였다면, 무엇보다 가족이 없었으니까, 저는 신원불명인 채로 살았을지도 몰라요. 신원을 알려줄 것은 제 몸에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기억을 잃었다고는 해도 유에가 제 동생이었다는 것만큼은, 어째선지 확실히 깨닫고 있었어요. 무라타 유에라는 작은 소녀는, 내가 지켜야만 하는 소중한 동생이라고.

그 새카만 바다 한가운데를 떠다니면서 유에를 끌어안고 있을 때부터, 그것만이 제 전부였어요.

네, 그건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유에는 제 단 하나뿐인 혈육인 동생. 대신할 수 없는 가족이니까요.

유에는 천성적으로 낯가림이 심한 아이에요.

그 사고 이전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사고 때문에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자기가 사람들 틈에 들어가는 건 서투르고,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으면 장난을 치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 그 때문에 자주 괴롭힘 당하곤 했어요.

그런 유에를 지켜주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제 역할이었죠.

물론, 괴롭힘 당하는 유에가 잘못한 부분도 컸어요. 누구라도 놀던 도중에 갑자기 다른 아이가 방해하면 기분 나쁠 테니까요. 하지만 유에는 어째선지, 그러는 것을 관두지 못하나 봐요.

그건 아마, 제가 유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항상 유에와 함께 있고, 유에를 즐겁게 해주고자 했어요.

그 때문에 저도 친구들이 점점 멀어졌지만, 저로서는 유에를 무엇보다도 우선해야만 하니까 그렇게 괴롭지만도 않았던 것 같아요.

유에의 심술궂은 성격도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되니 조금씩 나아졌지만, 역시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볼 때면 가끔가다 짜증을 내서, 친구는 적었던 모양입니다.

너무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유에는 기억을 잃은 저로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에요.

그리고 유에도, 그 낯가림과 심술궂은 성격 때문에라도, 저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뇨, 결코 둘뿐인 세계에 틀어박혔다는 것이 아니, 라고는 생각합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학교에서 친구도 사귀었어요. 유에도 짜증내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친구도 생겼고요.

물론, 스이렌 님의 존재도 컸습니다. 언제였는지, 짜증을 부리는 유에를 스이렌 님이 꼬옥 하고 진정될 때까지 안아주셨던 적이 있어요. 유에의 짜증은 저도 손댈 수 없을 정도였는데, 스이렌 님은 언제나 화내지도 내버려 두지도 않고 유에와 함께 있어주었답니다.

만약 저와 유에 둘뿐이었다면, 정말 그대로 둘만의 세계에 들어박혀서 세계랑은 단절돼 살아갔을지도 모르죠.

그것을 이어주신 스이렌 님이니까,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요.






      五 / 무라타 유에(村田ゆえ)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뭐냐니…… 이게 보틀 십(Bottle Ship)말고 뭐로 보인다는 거죠?

――미안해요, 딱히 배 자체에 흥미 있는 건 아니라서.

왜 만드냐니, 상관없잖아요.

저는 그냥, 만들고 싶어서 만들거든요.

힘들어요. 당연하잖아요.

이런 건 힘드니까 가치가 있는 거죠.

그야, 힘들게 만들어야――부수는 보람이 있으니까요.

그래요, 카드로 쌓은 탑 같은 걸 보면 무너트리고 싶어지지 않아요?

만드는 게 도미노더라도, 뭐든 좋아요.

열심히 쌓아올린 것을, 부서 버리는 게――짜릿짜릿하죠?

언니들, 오늘 밤은 묵고 간다죠?

그래요――그 사람이, 말이죠.

하나 충고해둘게요. 스이렌 님을 그다지 신용 안 하는 게 좋아요.

왜냐구요? 왜냐면 그 사람, 좋은 사람이니까요.

후후, 그렇게 이상한 얼굴 하지 말아요.

미나미 언니나 세이 씨한테는 제가 이런 말 했다고 이르지 마세요.

그 사람들, 스이렌 님을 신처럼 모시고 있으니까.

신한테 이런 말하면, 불경죄로 잡혀가니까요.

아아, 불교니까 부처님인가. 뭐, 어찌됐든 상관없지만요.

스이렌 님이요? 네――좋아해요.

언니는 진짜 싫어하지만요.

후후――.

렌코 씨, 라고 했죠.

왜 이런 시골까지 일부러 찾아왔어요?

――헤에,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찾는다구요.

그렇게 재미있는 전설 같은 건, 그 절에는 없을 것 같은데요.

있더라도 분명 비밀로 하고 있을 거예요. 분명히.

――무엇을 숨기려고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요?

후후, 깊은 의미는 없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네, 숨기는 게 있다고 상대방이 알고 있는 경우에요.

――아아, 그렇군요. 그런 방법도 있군요.

괜찮네요.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그래도, 가장 확실한 건.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게 한다.》가 아닐까요?

극단적이지만요. 후후.






      六 / 렌쇼 히지리(蓮沼聖)


미나미.

왜 그러니,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그래, 유에 말이구나.

그렇구나, 유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도, 미나미.

모르는 건, 당연한 거야.

설령 피가 이어졌다고는 해도, 인간들끼리는 뭐든지 알기란 어려운 법이야.

그러니까, 그 때문에 말이 있고, 어루만지기 위한 팔이 있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미나미는, 지금도 배가 싫니.

……그래, 그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 감각은 미나미만의 것일지도 몰라.

똑같은 체험을 했더라도 유에가 지금도 그럴지는 알 수 없지.

예를 들면, 그저 그뿐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물론 예를 들었을 뿐이지만.

아주 살짝, 서로 보는 방향이 어긋났을 뿐일지도 몰라.

유에는 미나미의 동생.

미나미는, 유에의 언니.

그건 틀림없으니까.

설령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건 변함없어.

그리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 다가가는 거야.

누구라도 비밀 하나나 둘쯤은 가지는 법이야.

혹시 유에의 비밀이, 어떻게 해서라도 미나미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라면.

괜찮아, 그러면 나, 스이렌 씨에게 맡기렴.

미나미 너도. 유에도, 내게는 귀여운 딸이니까.

괜찮아. 그러니까, 안심하렴.


      ※ ※ ※


아뇨, 정말, 그 사고 때 일은 기억나지 않아요.

최초 기억은, 검은 바다 위, 보트에 타서 유에를 끌어안고만 있었을 때에요.

그 이전 일은 정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요.

어째서 그런 걸 물으시죠?

유에가 하는 일이랑, 그 사고는 관계가 있나요?

유에는, 뭔가 제게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서.

아뇨, 미안합니다. 여러분들께 물어봤자 어쩔 수 없겠죠.

네? 뭐가요?

네, 전 무라타 미나미에요. 왜 그러시죠?

지금 여기 있는 게, 저인 게 당연하잖아요. ――…….






      七 / 마에리베리 한


렌코. 얘, 렌코.

일어나. 정말, 잠꾸러기 같은 말 말고.

으응, 유령 같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

저기, 봐봐. 렌코. 저기.

저거, 불이지. 모닥불인가.

이런 시간에 저런 데서, 정원에서 왜 모닥불을 피우는 거지.

지금 새벽 세시란 말이야. 밤중에 캠프파이어할 계절도 아니잖아.

아, 저기, 누가 있어. 모닥불 옆에.

어라, 미나미 씨? ……아니.

유에, 구나. 저건――.

아, 렌코, 기다려.

정말, 두고 가지 마.


      ※ ※ ※


유에? 뭐 하니?

이런 시간에 모닥불? 위험하니까, 마당에서 불을 피우면 안 돼.

――뭘 태우는 거니?

얘, 유에. 너 이런 곳에서, 대체 뭘 태우는――.

어? 뭐? 방금 뭐라고 했니?

얘, ――유에!? 잠깐, 어딜――.


      ※ ※ ※


렌코, 기다리라니까. ……아아, 추워졌어.

아, 미나미 씨. 그리고 유에…….

이건 대체……아, 유에!? 어, 어딜――.

레, 렌코, 안 쫓아가도 돼? 아, 잠깐, 불 위험해.

어? 뭐가 떨어져있어?

――유리 병? 깨져있는데, 이게 왜?

저기, 렌코――응? 사람들을?

아, 알았어. 불러올게. 렌코는? 유에를 쫓아가게? 응, 알았어.


      ※ ※ ※


유에, 유에!

어딜 가니, 얘, 기다리라니까, 유에――.

유에, 기다려, 유에, 유에,

――유에,


――――.

뭐……. 지금, 뭐라고?

팔? 누구 팔? 나는, 누구 팔을,

내가 뿌리쳤다고? 그 바다에서, 그 새카만 바다 속에서, 나는――누구를――

――아파. 머리가 아파. 뭐야, 이거……뭐니, 이게, 유에――.

유에? 왜……왜, 그렇게.

그런, 슬픈 얼굴로, 날 보는 거니――?

응? 유에――






      八 / 렌쇼 히지리


그러니까.

한밤중에, 여러분이 유에가 마당에서 무언가를 태우는 걸 발견했다.

정원에 나가니까 유에랑 미나미가 마주보고 있었고, 곧바로 유에가 달려가서 미나미가 그 뒤를 쫓았다.

메리 씨는 사람들을 부르러 가고, 우사미 씨는 뒤늦게 두 사람을 쫓았다가 뱌쿠렌사 경내에서 두 사람을 찾았다, 라는 거죠.

그때, 미나미 씨는 주저앉아서 떨고 있었고, 유에는 그것을 입 다물고 내려다보고 있었다고요.

――이상으로 다른 부분은 없죠? 그래요…….

고맙습니다. 폐를 끼쳐서 면목 없습니다.

두 사람 다, 잠들었나 봐요. 지금은 코비 씨랑 노하라 씨가 곁에 있어요.

근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유에는, 이런 시간에 마당에서 뭘 태우고 있었던 걸까요.

――네? 짐작간다구요?

이건……유리병인가요? 하지만 유리병은 타는 물건이.

보틀 십? ――유에가 만들던, 그거요?

잠시 기다려주세요.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에요. 보틀 십이, 유에 방에서 사라졌어요.

그럼, 유에는 만들던 보틀 십을, 병을 깨트려서 꺼내 태웠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그 보틀 십은, 유에가 얼마 전부터 만들던 거예요.

그 때문에 조금, 미나미랑 유에 사이가 서먹해지기도 했습니다만.

――왜냐구요? 아아, 그건요.

두 분께는, 이야기해드려야겠네요.

미나미랑 유에는, 배 사고로 가족을 잃었어요.

가족끼리 탔던 배가 전복하는 바람에, 둘만 살아남았죠.

그 때문에 미나미는 지금도 배를 무서워해요.

유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애는 우리들한테도 마음속을 제대로 보여주질 않는 아이라서――

어쨌든, 미나미한테는 쇼크였던 모양이에요. 유에가 보틀 십을 만들기 시작한 게. ……똑같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고 믿은 동생이 배신한 기분이었을지도 모르죠.

――유에가 뭐라고 말했나요?

부수는 보람이 있다――그런 말을?

무슨 의미일까요. ……부수려고, 태우려고 만들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아아……미안해요. 벌써 이런 시간이군요.

두 분 다 오늘 밤은 이만 주무세요.

소란 피워서 정말로 미안합니다.

미나미랑 유에한테는 제가 이야기를 들어볼 테니까요.

네, 그럼 이만. 안녕히 주무세요.






      九 / 무라타 미나미


아아――좋은 아침이에요, 우사미 씨, 메리 씨.

어젯밤에는 폐 끼쳐서 죄송했어요.

네, 전 이제 괜찮아요. 어젯밤엔 좀 어지러워서, 네, 그래서――.

……유에 말인가요? 유에는……방에 틀어박힌 모양이에요.

아뇨, 괜찮아요, 네.

심각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좀, 혼나는 게 무섭다던가, 그럴 테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네,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요. 예정도 없고――.

얘기, 말인가요? 무슨 이야기 말이죠?

――유에가 태우던 것? ……아뇨, 못 들었어요. 뭐였나요?

보틀 십? ……그 보틀 십 말인가요?

그걸, 태웠다? 병을 깨트려서 꺼내고?

왜 그런 행동을?

아뇨, 미안해요. 우사미 씨한테 물어봤자 소용없죠.

……어, 저희들 말인가요?

유에와 저에 대해서? 왜 그런 걸 물어보시죠?

――신경쓰인다구요. 그렇군요. 네……폐도 끼쳤으니,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으면 불합리하겠죠. 알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계속 신경 쓰였어요.

유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오세요. 방에서 이야기하죠.

저랑 유에가 가족을 잃게 된 사고 이야기부터.

여기, 차라도 드세요.

사고에 대해서는 이미 스이렌 님께 물어보셨군요.

그럼 제 기억에 대해서는? ……그래요, 그쪽은 모르시는군요.

실은 저――기억 상실이에요. 그래봤자,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다섯 살 이전에 지나지 않지만.

제 기억은 캄캄하고 차가운 밤바다에서 시작합니다. ――…….



      ※ ※ ※


……――그 뒤로 쭉, 저희들은 여기서 살고 있어요.

스이렌 님은 저희들에게 친어머니 같은 분이시고, 수련의 정원 모든 분들도 가족과 다름없어요. 하지만 역시, 제게는 유에가 가장 특별한 존재에요. 피를 나눈 동생이니까.

그래서 저는 계속, 유에를 지키자고, 유에 곁에 있자고 생각해왔어요.

……어쩌면, 그게 유에한테는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유에가 그 보틀 십을 만들기 시작한 건, 제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독립하지 않고 여기서 대학에 다니기로 했을 때 부터에요.

저는 처음부터 이곳에 남을 생각이었어요. 스스로의 의사로 유에와 떨어져서 독립할 선택지는 제게 없었으니까. 물론, 유에가 독립하고 싶다면 따라갈 생각도 역시 없지만요――.

네, 역시 그게, 유에한테는 짐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그 보틀 십은, 저를 향한 무언의 저항이었을까요.

역시 저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고밖에 못하겠죠. 네, 알고 있어요.

하지만――왜 그걸 애써 태우려고 했을까요.

보틀 십을 만드는 것 자체가 저를 향한 항의였다고 해도――그걸 태운다니.

그 사고 당시? 배는…… 아뇨, 불에 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배에 화재가 일어났다면, 분명 그 불이 인상에 남아있겠죠.

하지만 제 기억에 있는 건, 캄캄한 밤바다의 어둠뿐이에요.

――네, 그래요. 살아남은 건 저희 둘뿐이죠.

배에 몇 명 타고 있었냐고요? 글쎄요……아는 건 정말 없어요.

조사해봤자, 어쩔 수 없잖아요. ……저는, 기억하고 있지 않아요.

그 사고로 잃은 아버지, 어머니도……모두 다.

십삼 년 전이에요. 그건 틀림없어요. 제가 다섯 살 때 일이니까요.

……스이렌 님? 네, 저희 집은 뱌쿠렌사의 시주였다나 봐요.

저희 가족이랑 스이렌 님이랑 교류가 있었냐고요? 글쎄요, 저는 모르겠어요.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게 대체, 어쨌다는 거죠?






      十 / 마에리베리 한


얘, 렌코. 왜 그래? 그렇게 험악한 얼굴로.

미나미 씨 얘기에서, 뭐 이상한 거 찾았어?

――어? 십삼 년 전 사고? 조사해달라고? 알았어.

렌코? 어디 가?

찾는다고? 뭘?

응, 알았어. 조사만 하면 되는 거지.

근데, 뭘 조사해야 돼?

사고 희생자? 알겠는데…… 무슨 생각이야? 얘, 렌코.

――어머, 렌코. 돌아왔어?

앗, 무슨 일이야!? 흠뻑 젖었잖아. 이런 계절에, 감기 걸려.

아, 조사한 거? 응, 찾아뒀지만――그 전에, 몸부터 말려.

근데 대체 왜 물에 빠진 생쥐 꼴이야? 밖에 비도 안 내리잖아.

아, 세이 씨. 미안해요――욕조 써도 될까요?

됐다니까, 렌코. 감기 걸리면 두뇌활동도 못하잖아?

목욕 하고 와. 조사한 건 그 후에 이야기하자. 응?

개운해졌어? 그리고 진정 좀 했니.

그래서, 왜 그렇게 흠뻑 젖었는데?

아, 조사 결과? 정말, 급하긴. 자, 여기 있어. 미나미 씨랑 유에한테 벌어진 일이니까, 당시 기사를 여기서 보존했더라.

작은 연락선 사고였나 봐. 사망자는 승무원들이랑, 승객이었던 두 가족. 그중에 몇 명인가는 행방불명인 채고. 구조된 건 미나미 씨랑 유에 둘뿐이야.

――왜 그래, 렌코.

아아, 맞아, 배에 탔던 다른 가족들 중에, 미나미 씨 또래 아이가 있었어. 불쌍하게도…….

렌코? 얘, 정말 왜 그래?

얼굴이 새파랗잖아. 역시 감기 걸린 거 아니야? 응? 렌코――.






      十一 / 우사미 렌코


스이렌 씨, 지금, 잠깐 괜찮나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대단한 건 아니에요.

미나씨랑 유에 관련해서.

――단적으로 물을게요.

그 둘은, 친자매가 아니죠?

네, 그걸 묻고 싶었습니다.

스이렌 씨, 당신이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그것뿐입니다.


      ※ ※ ※


안녕, 유에.

그 보틀 십, 태워버렸구나. 애써 잘 만들었는데.

아아, 그편이 더 좋았으려나. 부수는 보람이 있으니까.

……근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너는 부수고 싶었어? 부수고 싶지 않았어?

언니가 널 위해 계속해온, 그녀 스스로조차 몰랐던 거짓 세계를.

미안해. 찾아보다가, 알아버렸어.

언니가 했던 거짓말. 그리고, 네가 그때 숨겼던 것.

찾았어. 덕분에 흠뻑 젖었지만.

――누가 찾아주길 바랐어? 그래서 태우지도 않고 그 연못에 가라앉혔구나.

어떻게 알았냐고?

어제,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숨기고 싶은 것을 제일 잘 숨기는 방법.

나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지.

『다른 곳에 숨겼다거나 이미 없어졌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네가 한 건, 결국 그런 거겠지?

왜 네가 일부러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웠는지.

보틀 십이라면 간단하게 부서 버리면 되는데, 태우려던 이유는 뭔지.

――처음에는 보틀 십 이외의 것을 태우려고 했는지 알았어.

그래서 모닥불 피우던 자리를 찾아보았는데. 문득, 바로 옆에 그 연못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 이 시설 이름의 유래이기도 한 수련 연못.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봤어. 너와 우리가 얘기했던 그 밤에, 그렇게 불을 피워서 보틀 십을 태우려던 이유. 연못 바로 옆에서 행한 이유.

너는 그렇게, 두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거지.

미나미 씨랑, 스이렌 씨에게.

그래, 찾았어. 네가 숨기려던 것.

――이거지? 네가 언니랑 함께 찍은 이 사진.

젖지 않게 비닐로 감싸서 돌로 누르고 연잎으로 가리다니, 생각도 못했어. 넌 이걸 스이렌 씨의 눈에서 감추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찾아낸 사람이 나여서 괜찮겠니.

응, 확인했어. 세이 씨한테 들었으니까. 너랑 미나미 씨가 옛날 이 시설에 막 왔을 때 사진.

너랑 미나미 씨, 친자매면서 그다지 안 닮았지.


――근데, 이 사진에 찍힌, 유에랑 나란히 있는 여자애.

유에, 네가 어렸을 때랑 쏙 빼닮았어.

너는 이걸 태워버렸다고 스이렌 씨가 생각하게 하고 싶었던 거지.

왜냐면 이게 지금은 유일한, 미나미 씨가 무라타 미나미가 아니라는 증거니까.

십삼 년 전의 사고로 죽은 사람들, 조사해봤어.

가라앉은 배에는 무라타가(家)외에도 한 가족이 더 타고 있었지.

하지만 그 일가는, 배랑 함께 전원 행방불명됐어.

――그것이, 미나미(南)라는 성씨를 가진 일가였고.

그 집에는, 네 언니와 동년배인 딸아이가 있었어. 미나미 치유리 씨.

즉 그것이, 미나미 씨가 저지르는, 스스로조차 모르는 거짓.

그리고 너와 스이렌 씨가 숨긴 단 하나의 사실.

「미나미 언니」는 「미나미(美波) 언니」가 아니라  「미나미(南) 언니」였어.

즉, 그런 거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사고에 대해서 미나미 씨한테 이야기 들었을 때야.

너희 두 사람만 구명보트에 올라타서 구조됐다지만, 한번 바다에 빠졌던 다섯 살 여자애가, 세 살배기 동생을 끌어안고 아무도 없는 보트에 올라갔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무리겠지. 그렇다면, 너희들을 보트로 끌어올린 누군가――아마도 어른이 보트에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하지만 그 사람은 구조 받지 못했어. 어째서일까?

처음에는, 너와 미나미 씨가 둘이서 그 어른을 바다로 빠트린 건 아닐까 의심했어. 하지만 불안정한 보트 위일지라도, 유치원생 둘의 힘으로 어른을 바다로 밀어내는 건 무리야. 그렇다면――그 어른은 스스로 자처해서 바다로 뛰어내렸다고 생각했어.

한번 보트에 올라탄 어른이 또 보트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이유는 하나뿐.

자기 자식을 구하기 위해. 그 이외에는 없어.

……여기까지 이야기에, 틀린 점 있어?

있으면 사정없이 말해. 망상이라고 웃어도 상관없어.

있지, 유에.

너는――미나미 씨를. ――……






      十二 / 무라타 유에


네, 모두 다――그대로에요.

언니는, 그녀는 제 친언니가 아니에요.

애초에 인연도 관계도 없던, 그저 우연히 같은 배에 탔을 뿐인 사람이에요.

그때, 저는 언니랑 사이가 나빠서 항상 싸우기만 했어요.

제가 태어나고 나서 어머니가 저만 신경 쓰니까, 언니는 그게 싫었던 걸지도 몰라요. 저는 언니한테 항상 괴롭힘 당해서 울기만 했죠.

그때도 그랬어요.

밤, 배에서 평소처럼 싸우고, 저는 배 갑판에 나가 울고 있었어요.

그런 저를 발견하고, 달래주던 사람이――미나미(南) 언니였어요.

미나미 언니는 울던 제게 눈깔사탕을 주고 이름을 물어봤어요. 제가 유에라고 이름을 대고, 언니 이름은 미나미(美波)라고 말하니까, 「나도 미나미. 미나미(南) 치유리. 똑같네.」하고 웃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좋아, 내가, 진짜 미나미 언니가 돼 줄게.」――라고.

……그리고. 저는 갑판에서 미나미 언니랑 이것저것 이야기했어요.

친언니가 얼마나 괴롭히고, 왜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지, 저는 그것만 이야기하고, 미나미 언니는 저를 위로해주었어요.

그리고 미나미 언니는 「그럼, 내가 괴롭히는 언니를 혼내줄게.」하고 일어서고, 우리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어요.

――배가 크게 흔들린 건 그때였어요.

정신이 드니, 저는 바다에 빠진 뒤였어요.

헤엄이라고는 쳐본 적도 없으니까, 그대로였다면 바로 가라앉았겠죠.

그래도, 미나미 언니가 제 손을 잡고, 널빤지에 매달려 있었어요.

저도 필사적으로 그 널빤지에 매달렸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지만 배에서 저희들이 떨어졌다는 건 어떻게든 이해하고, 널빤지에 매달린 채로 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타고 있던 배가 수면으로 뒤집히는 걸 보았어요.

영문도 모른 채, 자기가 지금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는 것만 이해하고, 저는 공포에 떨었어요. 하지만, 그 어깨를 감싸주는 팔이 있었어요.

미나미 언니는 「괜찮아. 미나미 언니가 유에를 지켜줄게.」라면서 저를 격려했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래서 저도, 「응, 미나미 언니.」하고 몇 번이다 대답했어요.

그러던 중에 고무보트가 가까이 오는 게 보였어요.

그 보트에 타고 있던 건, 제 어머니였어요. 어머니는 저와 미나미 언니를 발견하고, 필사적으로 손으로 저으면서 다가와서 저희들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그것을 붙잡고 저와 미나미 언니는 보트에 오를 수 있었어요.

미나미 언니를 보고, 어머니는 깜짝 놀란 얼굴로 「미나미(美波)는? 언니는?」하고 저한테 물었어요.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어머니는 그리고 계속, 바다 위를 둘러보면서 언니를 찾았죠.

미나미 언니는 저를 끌어안고, 괜찮아, 괜찮아, 하고 계속 말해줬어요.

――그때였어요.

보트의, 미나미 언니가 앉아있던 근처에, 올라오는 손이 있었어요.

그건 어린 아이의 손이었어요. 들여다봤다가, 저는 숨을 삼켰습니다. 언니였어요.

언니는 필사적인 모습으로, 거기 있는 게 저인걸 깨닫고 뭐라고 말했어요.

그 모습은, 언니가 화낼 때 얼굴이랑 똑같아서――저는 무서웠어요.

무서워서, 저는 고개를 저으면서 「싫어」하고 소리지르고 말았어요.

그 목소리에 어머니가 알아채고,

미나미(南) 언니가 보트에 올라온 언니의 손을 뿌리친 것이, 동시였어요.

미나미 언니는, 저를 지키려고 했어요.

제가, 언니한테 괴롭힘 당하는 것을 낱낱이 호소했으니까.

저를 지켜주겠다고 했으니까.

저를 괴롭히는 아이는, 바다에 가라앉아버려, 하고――.


언니는 손이 뿌리쳐지니까, 어두운 바다로 가라앉았어요.

그때 언니의 놀란 얼굴은――지금도, 눈동자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면서 혼자서 바다로 뛰어들었어요.

가라앉는 언니를 구하려고 그랬겠죠.

하지만 어머니도, 그대로 떠오르지 못했어요.

――그 뒤로는, 아마도 미나미 언니가 말한 그대로일 거예요.

우리들은 보트 위에서 구조 받을 때까지, 계속 서로 끌어안고 떨었어요.

그동안 계속, 저는 「미나미 언니」하고 계속 그녀를 불렀어요.

우리 가족과 마찬가지로, 미나미 일가도 친척이 없는 가족이었던 게, 분명 불행이었겠죠.

미나미 치유리의 신분을 나타내는 건 그녀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모님은 가지고 있던 물건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은 채 아직도 찾지 못했어요.

그리고, 구조 받고 눈을 떴을 때는, 그녀는 기억을 잃었어요.

그러니까, 그녀가 「미나미 치유리」가 「무라타 미나미」임을 증명하는 것은――제 증언뿐이었던 겁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자매가 배에 탔다가 여자애 둘만이 구조 받고, 작은 쪽이 큰 쪽을 「언니」라고 부른다면, 누구라고 둘은 자매라고 생각하겠죠.

그녀가 미나미 치유리라고 증언해줄 친척은 없었으니까, 더욱 그렇죠.

증인은 저 혼자였어요. 그리고 전, 그녀를 「무라타 미나미」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건 그걸로 결정된 거예요.

현실은, 구조 받은 건 미나미 치유리고, 행방불명된 건 무라타 미나미인데도.

진실은 그 순간, 정반대가 돼버린 거예요.

――하지만, 딱 한 가지.

그녀가 무라타 미나미가 아니라고 아는 사람이 있었어요.  

스이렌 님입니다. 그녀는 시주였던 무라타가랑 얼굴을 알고 지냈으니까, 언니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바로, 그녀가 무라타 미나미가 아니라고 눈치 챘습니다.

하지만, 스이렌 님은 그 거짓말을, 제가 저지른 거짓말을 받아주었어요.

그렇게 지금 생활이 시작했습니다.

저와 그녀의――자매로서의 생활이.


그러니까 이건, 그녀와 저와 스이렌 님 셋이서 계속하는 거짓이에요.

누구를 위해서? 글쎄요……누구를 위한 거짓이었던가요.

이제, 저는 모르겠어요.

언니요? 네――정말 싫어요.

진짜 싫어하니까, 빨리 나가주길 바라요.

빨리 나가서――가짜 동생 따윈, 잊어주길 바라요――.






      十三 / 우사미 렌코


그럼, 신세지다 갑니다.

스이렌 씨, 묵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세이 씨, 나츠리 씨. 리그가 시작되면 또 코시엔에서.

미나미 씨도요. 유에한테 안부 전해주세요.

그럼――안녕히 계세요. 가자, 메리.

후아……버스의 진동은 왜 이렇게 졸리게 하는 걸까.

메리, 잘도 버스 안에서 책 읽네. 나였으면 확실하게 멀미했는데.

……응? 그 사진?

한 번 더 비닐에 싸서 가라앉혔어. 연잎 밑에다가.

그걸 어쩔지는, 내가 정할 게 아니니까.

미나미 씨가 저지른 일이 긴급피난에 정당한지도, 내가 정할 게 아니고.

――유에는 결국, 어쩌고 싶었던 거냐고?

미나미 씨한테 모든 걸 생각나게 해서, 미나미 치유리로서 살기를 바랐다? 그건 아니겠지. 왜냐면 현실상, 미나미 치유리 씨는 행방불명취급이니까, 이제 와서 떠올려봤자 그녀는 무라타 미나미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

미나미 씨는 틀림없이, 잊은 채로 있는 게 행복할 거야. 스이렌 씨가 거짓말을 받아주었던 것도, 분명 그렇게 생각해서겠지.

떠올리고 만다면――진짜 무라타 미나미와, 그 어머니를 죽게 만든 죄가 그녀를 덮치게 돼. 이제 와서 짊어지기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야.

……하지만 유에는, 혼자서 그것을 계속 짊어져왔지.

그러니까 유에는, 그것을 미나미 씨한테도 짊어지게 하고 싶었을지도 몰라.

혼자만 죄를 짊어진다는 불합리에, 십삼 년이나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몰라.

하지만――유에는 절대로, 미나미 씨를 미워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를 위해서 십삼 년 동안 거짓을 이어오진 않았을 테니.

유에는 결국, 미나미 씨한테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는가, 아니었는가.

사진을 태우지 않고, 수련 밑에 가라앉힌 의미도――아마, 내가 단정 지을 건 아니지.

있잖아, 메리.

언제 내가 「객관적인 진실이 존재한다.」라는 생각을 전시대적이라고 말했었지.

현재 상대성정신학으로는, 진실은 주관 속에 있다는 게 상식이라면서.

생각을 고쳤다는 게 아니야. 객관적인 진실은 확실히 존재해. 최소한 관측 가능한 현상으로서의 사실에 한해서 말이지. 행방불명된 무라타 미나미 씨, 그 장소에 있던 사람은 미나미 치유리 씨.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야.

하지만――마음이란, 결코 객관적으로는 관측할 수 없어.

그러니까 마음속 진실은, 마음의 수만큼, 주관의 수만큼 존재해.

아니, 똑같은 마음속에도 분명, 복수의 진실이 존재하겠구나.

전에도 말했잖아, 메리.

주관 밖에 절대적인 진실은 존재해.

하지만, 주관적인 진실이 그것과 양립하고 만다는 것이, 인간의 마음의 불가사의야.

그렇기에, 네가 배우는 이상한 학문이 발전했겠지만.

저것 봐, 메리. 노을이 예뻐.

수평선에 지는 석양이라면 최고일 텐데. 여기가 나라랑 교토의 경계라는 게 유감이네.

있지, 메리.

노을이 예쁘다는 건, 객관적인 진실이지 않아?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주관적이라고? 여전히 멋없긴.

그래도, 메리는 예쁘다고 생각하지?

그럼 지금은, 그게 객관적 진실이어도 괜찮잖아. 응?








렌조 미키히코 『회귀천 정사』에 수록된 단편같은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
무리였습니다.

浅木原忍
http://r-f21.jugem.jp/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