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5년 야구



原作者 : 浅木原忍 (http://r-f21.jugem.jp/)
原題 : 2085年のベース・ボール 
         (http://coolier.sytes.net:8080/sosowa/ssw_l/?mode=read&key=1254405994&log=88)
그림 : 김발칸
번역 : 선배
작품 태그 : 비봉클럽, 야구소재, 쇼우나즈…같은 오리캐 있음, 한신 타이거즈, 작자는 호크스팬.
























 

 




      一

「메리, 주말에 야구 보러 갈래?」

목요일. 두 장의 티켓을 꺼내들고, 우사미 렌코는 그렇게 말했다.

대학 카페테라스에서 점심을 먹던 참이다. 나는 낯선 단어에, 먹던 오므라이스를 무심코 씹지도 않고 삼켰다.

「야구라니, 그 야구?」

「그야 야구지. 프로야구. 티켓이 생겼어. 일요일 시합.」

그 티켓을 팔랑팔랑 흔들며, 렌코는 어쩐지 흥분해서 말했다.

계절은 봄의 끝자락. 뉴스로 가끔 프로 야구 결과가 흘러나와 주워듣기는 했다. 나는 별로 알지도 않지만, 교토에서도 팬이 많은 한신 타이거즈가 올해는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자연히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렌코는 한신 팬이었지. 도쿄 태생이면서――

「나, 야구는 그다지 모르는데?」

팬도 아닌 나와 함께 가는 것보다, 지인 중에서 팬이랑 같이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괜찮아, 렌코님이 가르쳐줄테니까. 한신 타이거즈 고난과 영광의 150년을, 철저하고 확실하게.」

「……적당히 해줘.」

물리학이나 책, 또는 영화나 음악 같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렌코는 멋대로 언제까지라도 떠들어댄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그에 어울려줬지만, 아직도 이야기를 제대로 끊을 만한 수단은 찾지 못했다.

흥미 있는 척 흘려들으면 자기 세계로 빠져들고, 내가 이해하려고 하면 더 신이 나니까, 전혀 손도 못 대겠다.

――어쨌든.

「한신 시합, 이겠지?」

「물론. 장소는 역시 코시엔, 상대는 메이테츠 드래건즈.」

코시엔이라면, 이웃 현이기는 해도 꽤 멀리 나가야 한다.

「근데 정말, 다른 팬한테 권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에이, 메리도 참.」

불쑥, 렌코는 이쪽으로 몸을 내밀면서, 코앞에 티켓을 들이댔다.

「나는, 메리랑 같이, 야구를 보러 가고 싶단 말이야.」

렌코는 잘 들으라는 듯이 그렇게 말한다. 정중히도, 메리랑 같이, 를 강조하면서.

왠지 갑자기 쑥스러워지는 것을 속이려고, 나는 오므라이스 마지막 한 입을 먹었다.

케첩의 진한 달콤함이, 오래 혀에 남았다.

「……목적은?」

「그야, 메리가 한신 팬이 됐으면 좋겠으니까.」

한신의 세로 줄무늬 레플리카 유니폼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마 굉장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가끔은 야구장에서 화창한 일요일 오후를 보내도 좋잖아.」

아이스티의 얼음을 빨대로 섞으면서, 렌코는 웃었다.

「그러니까, 메리. 나랑 야구 보러 갈래?」

평소대로, 렌코의 권유.

그녀에게 휘둘리는 일상은, 언제나 그렇게 막을 연다.






      二


일요일. 우리들은 JR토카이도본선을 타고, 코시엔으로 향했다. 전차 안에는 명백하게, 지금부터 야구 보러 갑니다, 하는 스타일의 사람들로 붐볐다. 「T」와 「H」가 합체한 로고가 박힌 모자에, 세로 줄무늬의 레플리카 유니폼. 가방을 살짝 삐져나오고 있는 건 방망이 모양의 메가폰이다.

그리고 나와 렌코도, 그런 한신 팬들 속에 똑같은 모습으로 섞여있다.

덧붙여 내가 입은 한신 유니폼은 렌코에게서 빌린 것이다.

「똑같은 사람들이 잔뜩 있네.」

「그야, 이 시간에 교토에서 히메지행의 토카이도 본선을 타는 건 코시엔 가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긴 해도, 교토에서 애써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혼잡한 차내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교토를 본거지로 하는 팀은 한큐 버팔로스였을 텐데, 차내의 한신 팬 수를 보면, 한신의 본거지는 교토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게다가, 올해 한신 팬은 한껏 달아올랐지.」

「선두니까?」

어제 렌코는 우리 집에 와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야구에 대해서 여러 가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덕분에 현재 패넌트의 자세한 순위라던가, 그저께까지는 몰랐던 한신 주력 선수의 이름 등을 알게 됐다.

개막하고 2개월, 현재 센트럴리그는 한신 타이거즈가 개막부터 선두를 질주하고 있고, 그것을 메이테츠 드래건즈와 한큐 버팔로스가 뒤쫓고 있는 전개다. 훌륭한 투수진을 자랑하는 한신과, 강력 타선의 메이테츠, 기동력과 수비의 한큐, 이런 팀들의 특성으로 삼파혼전이라던가 뭐라던가.

「물론, 선두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올해는 말이지, 메모리얼 이어(Memorial year)거든.」

렌코는 쓰고 있던 모자――평소 그 모자가 아니라, 한신 야구 모자를 벗고 거기에 붙은 핀 배지를 보여주었다.

금과 은이 섞인 그 핀 배지는 《100》이라는 숫자를 나타내고 있다.

「100주년이야.」

「150년이 아니고?」

「그건 팀 창설. 100주년인 건――저번 일본 1위 이후.」

그래, 전설의 1985년. 렌코는 한 세기 전의 년도를 말하면서 감개무량하게 끄덕였다.

「……저번, 이라니.」

나는 눈을 깜빡였다. 전회 일본 1위, 라는 건.

「100년이나, 일본 1위를 못했던 거야?」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린 말이, 전차 안에 생각보다 크게 퍼졌다.

순간, 근처 한신 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렌코는 주변에게 어색한 웃음을 보이고는, 몸을 움츠린 내게 귓속말했다.

『그럼 안 돼 메리, 그렇게 말하면 기분나빠하는 팬도 많으니까.』

『그런 건 어제 가르쳐주지 그랬어――.』

내가 작게 항의하는 동안 차내에 안내 목소리가 울렸다.

《잠시 후, 오사카, 오사카.》

「이런, 내리자 메리.」

렌코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하고 나는 의아해했다.

「벌써? 코시엔 입구에서 내리는 거잖아?」

「아니야. 코시엔 야구장이랑 가장 가까운 역은 한신전철로 가는 코시엔 역이니까, 오사카에서 환승해야 돼. 우메다까지 걸을 거야.」

노선도에 『코시엔 입구』라는 역명이 있었으니까, 틀림없이 그곳까지 타고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가보다. 까다롭기만 하다.

홈에 열차가 미끄러져 들어가자, 열린 문으로 인파가 흘러나간다. 우리들도 그 흐름을 타고 걷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에 몰리는 인파가 엎치락뒤치락, 수송력이 사람 수를 따라잡지 못한다.

「메리.」

렌코가 사람들 속에서 내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나는 바로 잡았다.

사람들로 넘치는 오사카역에서는 자칫하면 합류가 힘들 것이다. 나는 놓치지 않도록, 렌코의 손을 꼭 붙잡았다.





      三

그러고 보니 프로 야구를 현장에서 관전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일지도 모른다.

게이트에 줄을 서서 티켓을 내민다.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북과 트럼펫 소리. 여기저기 사람이 오고 가는 통로에서, 렌코에게 손을 끌려 걷는다. 통로에 늘어선 가게에서 파는 것은 마실 거리나 팝콘, 타코야키와 카레, 핫도그와 감자튀김 등등. 여름 축제 노점상 같다.

그러는 사이에, 어떤 통로 입구에서 렌코가 발을 멈췄다.

「여기야.」

내야 지정석 입구, 라고 쓰여 있다. 서있던 스태프한테 티켓을 보여주고(좌석의 확인인 것 같다) 우리들은 통로를 빠져나갔다. ――순간, 확 넓어진 시야에, 나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정연하게 늘어선 좌석과, 그곳에 앉아있는 무수한 사람들. 그 앞에는 초록 잔디와 연갈색의 흙으로 물들여진 그라운드가 펼쳐진다. 반대 측 스탠드에도, 사람, 사람, 사람. 삼만 명 이상은 들어와 있지 않을까.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 같은 장소에 같은 목적으로 모여 있다는 광경은 어쩐지 몹시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됐다.

터널을 빠져나가니, 그곳은 야구장이었다――아니, 이건 역시 성의가 없는 표현이다.

「이쪽이야, 앞줄에 좋은 자리 얻었어.」

그런 내 감격을 알아차렸는지 아닌지, 렌코는 여전히 내 손을 잡은 채로, 좌석 사이의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갔다. 도중에, 맥주 회사 로고가 들어간 큰 배낭을 등에 짊어진 여성과 엇갈린다. 뭘까 생각해보니, 저 등의 배낭에 맥주가 가득 들어있어서, 컵에다가 따라주는 것 같다.

렌코가 「여기야」하고 가리키는 좌석에 앉았다. 문득 좌석번호를 확인하니 《7-19》라고 써있다. 옆에 렌코의 자리는 《7-20》. 줄의 가장자리다.

주변에는 우리처럼, 한신 유니폼과 모자를 쓴 사람들뿐이었다. 대전 상대인 메이테츠 드래건즈의 유니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돌리자, 야외 스탠드에는 감색 유니폼을 입은 무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깃발도 휘두르고 있고, 응원단인 모양이다.

「메리, 뭐 좀 사올 건데, 뭐 마실래?」

「어? ……그럼, 진저에일.」

「오케이. 잠깐 기다려.」

렌코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서 계단을 올라갔다. 남겨진 나는 작게 숨을 돌리면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방망이를 휘두르는 선수나, 캐치볼을 하고 있는 선수가 있다. 감색 유니폼이니까 메이테츠 선수일 것이다.

스크린을 바라보니, 마침 오늘 선발 멤버가 발표되고 있는 모양이다. 구장내의 안내 목소리에 맞춰서, 스크린에 화려한 연출과 함께 한신 선수들이 비춰지고 있다. 1번 중견수 나카모리, 2번 2루수 타니모토, 3번 유격수 카라스마――.

「아아, 나츠리(夏莉)! 벌써 시합 시작하겠어요!」

「자자,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진정해. 근데, 네 자리는 어디지」

문득 들리는 목소리. 시선을 돌리니, 똑같이 한신 유니폼을 입은 여성 두 명이 계단 위에서 걸어 내려오는 참이었다.

「에에, 티켓이――어, 어라? 으음, 어디 있지…….」

「또! 방금 입구에서 스태프한테 보여줬잖아!?」

「그, 그랬는데…… 어, 어쩌죠, 나츠리.」

티켓을 잃어버렸는지, 우왕좌왕 눈물을 글썽이는 숏 컷의 자그마한 여성. 그 옆에는, 길게 땋은 머리의 여성이 기가 막힌 듯 고개를 저었다.

「지갑 안.」

「거, 거긴 방금 찾아봤는데요.」

「지폐 사이는?」

「예? 어어――아, 아아, 있어요, 있네요, 나츠리!」

「알았어, 알았다니까. ――나참, 왜 넌 항상 그러는 걸까.」

티켓을 흔들며 작게 폴짝이는 자그마한 여성에게, 나츠리라고 불린 땋은 머리의 여성이 두통을 참듯이 한숨을 쉬었다. 「미, 미안해요.」하고 풀이 죽는 작은 여성. 나츠리 씨는 어딘가 중성적(中性的)인 미소를 띠우고, 자신의 티켓을 꺼내 확인했다.

「나는 《7-17》이군. ……그럼, 여긴가.」

「《7-18》이니까, 전 나츠리 옆이네요.」

마침 렌코가 앉았던 가장 자리에 손을 대면서, 나츠리 씨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우리 옆, 안쪽 자리에 앉는 모양이다. 나는 일어서면서, 통로에 나와 두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앉은 채로 두 사람을 통과시키려면 좌석과 좌석 사이는 비좁다.

「감사합니다.」

자그마한 여성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서, 오히려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자매라고 하기에는 닮지 않았고, 친구끼리나 선후배관계인가, 그쯤일 것이다. 머리를 땋은 여성, 나츠리 씨가 연상이리라고, 자리에 재차 앉으면서 생각했다.

「기다렸지 메리. 자, 팝콘.」

그때, 렌코가 두 사람 몫의 진저에일과 팝콘을 들고 돌아왔다. 「팝콘은 부탁 안 했는데.」하고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만, 「됐으니까, 받아.」하고 렌코는 개의치 않고 내밀었다.

「야구 보다 보면, 배고파지거든.」

「……그런 거야?」

「그런 거야. 신기하게도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렌코는 빨리도 팝콘을 우물거렸다.

하늘은 적당한 구름이 햇빛을 가려주고 있지만, 흐리지도 않고 비가 올 것 같지도 않다. 약간 흐리고 온화한 오후의 날씨는, 야외에서 야구 관전과 술을 마시기에는 절호의 날씨였다. 햇볕에 그을리는 일을 신경 쓸 필요가 그다지 없는 건 피부에도 다행이었다.

「나츠리, 당신도 팝콘, 먹을래요?」

「응? 아니, 별로 그런.」

「사올게요.」

몸집 작은 여성이 일어섰다. 하지만, 나츠리 씨가 유니폼의 옷깃을 끌어당겨, 걸으려던 상대방의 움직임을 막았다.

「넌 안 가도 돼.」

「나, 나츠리, 절 그렇게 바보취급하지 말아주세요!」

「――내기해도 좋아. 넌 여기서부터 통로의 매점까지 팝콘을 사서 돌아오는 사이에, 반드시 뭔가 잃어버릴 거야. 아마도 지갑. 아니면 막 산 팝콘이라던가. 어쨌든 네 지갑이 손해야.」

「그렇지 않아요!」

「과거 실적과 경험에 따른 충고인데.」

어깨를 으쓱이는 나츠리씨에게, 작은 여성은 침묵했다.

「아, 안 잃어버리게 조심할게요!」

「……나도 따라갈게.」

「어린 애도 아닌데――」

「그랬군요, 세이(星) 선배.」

선배, 를 강조하는 나츠리 씨에게, 세이 선배라고 불린 여성은 분한 듯이 신음했다.

두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나는 옆의 렌코를 돌아보았다.

「얘 렌코, 경어를 쓰는 선배와 반말 쓰는 후배란 어떻게 된 걸까?」

「응?」

렌코가 좋아할 것 같은 작은 수수께끼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렌코는 그라운드에 시선을 집중한 채로 딱히 흥미도 없이 대답했다.

「선후배지간이라고는 해도, 연령도 그렇다고는 할 수 없잖아?」

「――아아, 그렇긴 하네.」

예를 들어 대학에서 재수라도 했으면, 동기 친구의 다수가 연하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사회인이라고 해도, 취직한 연령에 따라서는 연하의 선배도 있을 것이다.

「응? 오늘 선발, 사에키야? 요시토미가 아니라?」

스크린에 비춘 양 팀 선발 멤버를 보고, 렌코가 소리 질렀다. 나는 작게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거기에 또, 나츠리 씨와 세이 씨 두 사람이 돌아왔다. 자리를 비켜주는 우리에게, 「여러 번 죄송합니다.」하고 미안한 듯이 세이 씨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공손한 사람이다.

「어라, 오늘 선발은 사에키에요? 요시토미라고 생각했는데.」

스크린을 올려보고, 내 옆에 앉은 세이 씨가 똑같이 소리 질렀다. 「뭐야, 아까 눈치 채지 못했어?」하고 나츠리 씨가 어깨를 으쓱였다.

「요시토미한테 무슨 일 있었을까요?」

「그러게요…….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렌코가 돌아보면서 목소리를 높이자, 세이 씨는 걱정스럽게 고개를 갸웃했다.

「마츠나가도 또 결장이네요.」

「예,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이건 앉을 자리를 잘못 정했을지도 모르겠다. 렌코가 세이 씨와 야구설법 모드로 들어갔다. 사이에 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동안, 그라운드에서는 치어리더와 마스코트들이 시합 개시 전의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치어리더와 함께 능숙하게 춤추는 호랑이 마스코트는 토라키라는 이름인 모양이다. 화려하게 공중제비를 돌자, 스탠드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저렇게 큰 탈을 머리에 쓰고 가볍게 움직이는 모습이 용했다.

그라운드에는 한신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지션으로 걸어가는 선수의 이름을 안내 목소리가 읽을 때마다, 큰 환호성이 끓어올랐다. 렌코랑 세이 씨도 즐겁게 메가폰을 두드렸고, 나도 덩달아 렌코한테서 빌린 메가폰을 따라 휘둘렀다. 조금 부끄럽다.

「두 분께서는 카라스마랑 코노 팬인가요?」

갑자기 세이 씨가 우리들을 보면서 물었다.

「예? 아 그게―― 저는.」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한신의 레귤러도 잘 몰랐다. 지금 입고 있는 유니폼이나 모자, 게다가 메가폰도 렌코한테서 빌린 것이다. 카라스마라는 선수도 이름만 들어본 수준이다.

「그야 물론, 데뷔했을 때부터 코노 팬이에요. 카라스마도 좋아하지만요.」

렌코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코노 유니폼 입은 사람은 처음 보네.」하고 나츠리 씨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 보니, 내 유니폼 등에는 『KARASUMA』라는 글자가 들어있다. 등번호 7은, 유격수 포지션에서 캐치볼을 하고 있다. 갑자기 무슨 질문인가 싶었는데, 우리가 입은 유니폼의 이름을 보고 질문했던 모양이다.

코노, 라는 이름은 선발 멤버에는 없었다. 오늘은 던지지 않는 투수인 걸까.

「타석에 섰으면 레귤러일 텐데, 코노.」

「매년 그렇다고는 하는데요. 저는 종반에 수비 위주로 나서는 코노가 좋아요. 감독한테 신뢰받고 있구나 싶어서 기쁘잖아요?」

「있어주면 안심이 되니까요, 코노는.」

나츠리 씨와 렌코와 세이 씨, 또 한신 설법이 시작돼버렸다. 역시 내가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다. 왠지 분하다.

「……코노는 어떤 선수야?」

이야기가 중단된 틈을 타, 나는 렌코한테 작게 물었다.

「아아, 코노는 내야 수비 선수. 본직은 삼루야. 오늘도 벤치에 있나봐.」

우리가 앉아있는 일루측은 한신 벤치의 위라서, 한신 벤치의 모습은 여기서는 안 보인다.

「예비구나.」

「슈퍼 서브라고 하는 거야, 이런 건.」

렌코는 어쩐지 사랑스럽게 등번호 54를 쓰다듬었다. 그다지 레귤러는 아닌 것 같은 등번호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선수의 팬이라는 건 확실히 렌코다울지도 모르겠다.

「내 유니폼은?」

「어제 가르쳐줬잖아. 우리 부동의 3번 유격수야. 토박이 스타이기도 하고, 저기, 그밖에도 많아. 카라스마 팬.」

렌코의 말에 돌아보니, 확실히 등번호 7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많았다.

「인기 많구나.」

「그야, 작년 베스트 타자에다가 도루왕이니까.」

그렇구나, 나도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나츠리랑 똑같네요.」

세이 씨가 웃으면서 말한다. 그러고 보니, 나츠리 씨도 등번호 7이었다. 세이 씨는 등번호 22였다.

「한신은 투고타저(投高打低)라고 하는데, 카라스마가 없으면 정말 타선이 살지 못해. 안 그래도 지금 5번인 마츠나가가 부상으로 없으니까, 카라스마가 노력하지 않으면, 원호 없는 선발진이 불쌍할 정도야. 오늘 선발인 사에키 같은 경우가 특히.」

「사에키 때는, 야수가 협정이라도 맺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점수를 내지 못하지.」

렌코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지, 나츠리 씨가 또 어깨를 으쓱였다.

「저기 선발도 니시카와니까, 오늘은 투수전이 되겠네요.」

마운드에서 투구 연습을 하는 투수를 바라보면서, 세이 씨가 중얼거렸다.

「구장에서 볼 때는, 바보 시합이 즐겁긴 한데.」

「아니지, 투수전의 긴장감도 좋지 않나.」

「어느 쪽이든, 한신이 이기는 게 제일이에요.」

렌코와 나츠리 씨의 말을, 세이 씨가 능숙하게 마무리 지었다. 하긴, 그건 여기 모인 한신 팬 모두의 생각임에 틀림없다. 응원하는 팀의 패배를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구식은, 이 시합의 스폰서 사장이었다. 비만 기색이 있는 남성이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공을 던지고, 박수가 구장에 울린다. 그 박수가 끝나자, 불현듯 독특한 긴장감이 구장을 감싼 느낌이 들었다. 시각은 14시. 시합이 시작한다.

심판이 움직이고, 마운드의 투수가 손을 높이 들었다. 좌측 스탠드에 있는 메이테츠 응원단이 트럼펫을 불었다. 던져지는 하얀 공. 메이테츠 1번 타자가 방망이를 휘두른다. 경쾌한 소리. 맞은 공은 가운데 방향으로 높이 올라간다. 「우와」하고 렌코가 비명처럼 신음하고, 세이 씨가 몸을 일으켜 타구의 행방을 시선으로 좇는다.

중견수가 열심히 뒷걸음질을 치면서, 머리 위의 타구에 글러브를 내민다. 펜스에 격돌하기 직전, 타구가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대로 중견수는 펜스에 부딪쳐서 굴렀다. 구장 전체가 숨을 삼킨다.

하지만, 곧바로 중견수는 일어나서 글러브를 높이 들었다. 단번에 구장이 들끓어, 2루로 향하던 타자가 허탈하게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렌코와 세이 씨가 동시에 일어나 메가폰을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중견수의 파인 플레이. 나도 모르게, 멈추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역시 위태천[각주:1] 나카모리!」

「빠지는 줄 알았어요. 펜스에 부딪쳤는데, 괜찮을까요?」

「멀쩡한 것 같은데. 근데, 첫 번부터 멋진 장면을 보는군.」

렌코는 아직 기뻐하고, 세이 씨는 걱정스럽게 선수를 바라보고, 나츠리 씨는 만족스럽게 끄덕이고 있다. 하나의 플레이를 즐기는 방법이 삼인삼색이라는 느낌에, 왠지 재밌다.

스코어보드에 아웃을 알리는 빨간 불이 하나 켜졌다. 1이닝 3아웃으로 9회까지. 초말이 있으니까 이것을 54회나 반복하는 것이다. 응원하는 쪽도 고생이다.

「메리, 운이 좋은걸. 오늘은 멋진 시합이 되겠어.」

진심으로 즐겁게 렌코가 말하니까, 분명 그렇게 되겠지, 하고 나도 생각했다.






      四

생각해보면 야구를 이렇게 제대로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룰도 확실하게는 모른다. 신선하긴 하지만, 모르는 것도 많다.

「투수가 던지는 동작, 가끔 바뀌는데――.」

「퀵 말하는 거야? 그건 주자가 도루 못하게, 빨리 던질 수 있는 폼으로 바꾸는 거야. 크게 휘두르면 손쉽게 도루 당하니까.」

「헤에, 꽤나 합리적인 이유가 있구나.」

「야구는 확률과 합리성의 스포츠인걸. 게다가 확률만으로는 알 수 없는 흐름이나 기세가 더해지니까 재밌는 거야. 타니모토, 확실히 보내라구―!」

내 초보적인 질문에도, 렌코는 응원을 하면서도 제대로 대답해준다. 이럴 때는, 상대방의 말하기 좋아하는 점이 고맙다.

「가끔 볼을 교환하는 건, 왜 그러는 거야?」

「그건, 반칙투구의 방지야.」

베이스 바로 앞에서 한 번 튕긴 공을, 포수가 벤치로 보내고 있다. 심판이 새로운 공을 꺼내들어, 투수에게 던져서 건넨다.

「반칙 투구라니?」

「공에 땀이나 흙 같은 게 묻거나 상처가 나면, 변화구의 구부러짐이 크게 변해. 변화구는 미묘한 공기 저항으로 휘니까 말이야. 그런 건 룰 위반이 되고. 그래서, 그걸 방지하려고 투수한테는 새 공을 주는 거야.」

「흐음. 만약 그런 게 발견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퇴장?」

「아마, 볼 판정이 되고 경고였었나.」

「어머, 퇴장은 안 되는구나.」

「그라운드의 흙이 묻었다던가, 타자가 때렸을 때 생긴 상처라고 하면 부정하기 힘드니까. 반복하거나 증거가 나오면 물론 퇴장이지.」

「아아, 그래서 공을 교환하는구나.」

「그렇지. 뭐, 애초에 반칙투구가 실제로 시합 중에 확인된 건 거의 없지만.」

세세한 룰까지 잘 파악해두고 있다. 내 곁에서 듣고 있던 나츠리 씨도, 「보크가 아니고 볼 판정이 되는 건가. 그건 몰랐군.」라면서 감탄했다. 이것저것 말하는 동안 메이테츠의 타자가 안타를 쳐서, 「아――」하고 렌코가 신음했다. 화장실에 갔던 세이 씨가 돌아와서, 주자가 진출해있는 모습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사에키, 파이팅――!」

마운드 위의 투수를 향해서 렌코가 외친다. 구장을 감싸는 환성 속, 혼자 외치는 소리가 그라운드의 선수에게까지 닿을 리는 없겠지만, 분명 외치는 것이 중요하겠지.

어쨌든, 시합은 렌코의 말대로 긴박한 전개가 됐다.

3회, 한신이 투 아웃에서 연타로 찬스를 잡고, 3번 카라스마가 2점 안타를 날려 주도권을 잡는다. 하지만 메이테츠도, 5회와 6회에 이어서 솔로 홈런을 퍼부으면서 동점. 2대2가 되면서, 시합은 7회로 이어진다.

이번 회의 선두 타자는 첫 회에 파인 플레이를 보였던 1번 나카모리였다. 우리들 전방에 앉아 있는, 나카모리의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가 커다란 소리로 『나카모리이이이이!』하고 외친다. 그 환성에 응하듯이, 날카로운 타구가 좌측으로 빠져나갔다. 노아웃에 1루.

2번이 잽싸게 희생 번트를 날려, 구장의 열기가 단숨에 올라갔다. 주도권을 쥐게 만들었던 3번 카라스마가 타석에 선다.

「카라스마 ―― !」

곁의 렌코도 완전히 한신 팬 모드가 돼서 응원을 보낸다. 나도, 응원 유니폼의 인연이 있어선지, 엉겁결에 함께 소리를 지른다. 남들 앞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게 부끄럽다는 감각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구장의 열기에 전염됐을지도 모른다.

「카라스마라면 해낼 거예요, 분명.」

세이 씨가 빌듯이 말하고, 나츠리 씨는 팔짱을 끼고 전황을 바라본다.

메이테츠의 투수는 볼 셋을 날렸다. 구장에 야유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게도 승부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점인 위기상황에서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네 번째 공도 볼이라서, 카라스마는 방망이를 휘두르지 못하고 일루로 걸어갔다. 구장 전체가 미묘하게 낙담어린 환성으로 덮인다. 포볼로 주자가 나가는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승부를 피하게 된 결과로는 그다지 좋지만도 않다.

포수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시합은 재개된다. 메이테츠의 투수가 세트 포지션을 잡는다. 첫 구.

노렸던 것처럼, 4번의 방망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뿜는다.

통쾌한 직선 타구가 오른쪽 중앙으로 뻗는다. 대환호. 중견수가 뒤쫓는 중에, 2루 주자는 여유롭게 홈으로 돌아왔다. 점수를 앞지른다. 렌코와 세이 씨가 벌떡 일어나면서 기뻐한다.

게다가 1루 주자인 카라스마도 단번에 3루로 들어왔다. 중견수로부터의 송구. 날카롭게 돌아오는 공이 포수의 밑으로 날아오는 것과, 카라스마가 미끄러지면서 들어오는 것이 동시였고――.

구장을 감싼 찰나의 정적. 그리고, 심판의 양손이 옆으로 크게 벌려졌다. 세이프.

한층 더 큰 환성이 울린다. 스코어보드에는 2의 숫자가 새겨진다. 4대2.

「후지사키 나이스 배팅! 카라스마 나이스 런!」

춤출 기세로 폴짝이는 렌코에게 이끌려, 나도 렌코와 세이 씨의 메가폰과 서로 부딪쳤다. 정신이 들고 보니, 나도 기분만은 완전히 한신 팬이었다.

「좋아, 이건 이겼군. 나는 목욕탕에 갔다 올게.」

「나, 나츠리! 플래그 꽂지 말아주세요!」

나츠리 씨가 일어서자, 세이 씨가 비명을 질렀다. 근데 목욕탕이라니 무슨?

「어때, 메리. 재밌지?」

흥분이 채 식지 않은 모습으로, 렌코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라운드를 바라보면서, 「그러게」라고 수긍했다.

――그래, 스포츠 관전이 지금도 옛날도 여전히 사람들의 오락으로 존재해온 이유를, 왠지 모르게 알 것 같다.

 

시합은 이후, 렌코가 말하길 『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후지카와 2세』라고 하는 등번호 22의 마무리 투수가 확실하게 9회를 잡고, 4대2로 한신이 추격을 따돌리고 승리했다.

마지막 타자가 삼진으로 끝나는 순간, 와 하고 환성이 폭발했다. 마치 우승이라도 하고 벌어지는 축제처럼 보였는데, 매 시합에서 이렇다면 한신 팬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겼다 이겼어! 메리, 예이!-」

「예이.-」

무심코 이끌려서, 메가폰을 렌코와 마주 부딪친다. 옆에서는 세이 씨가 날뛰고 있고, 나츠리 씨는 한숨을 쉬고 있다. 태도는 삼인삼색이지만, 나름 한신의 승리를 기뻐하고 있는 건 변함이 없다.

「근데, 모처럼 코노라는 선수가 나왔는데, 공이 가질 않았네.」

렌코가 좋아하는 그 선수는, 9회부터 삼루 수비에 들어갔지만, 마무리 투수가 삼진, 포수 플라이, 삼진으로 잡아서 명수(名手)라고 불리는 수비는 볼 수 없었다. 조금 아쉽다면 아쉽다.

「괜찮아. 나는 코노가 나온 걸로 만족이야.」

하지만, 렌코는 좋아하는 선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쁜 모양이다. 팬이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뭐, 코노가 나왔다는 건 이긴 게임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항상 보고 싶은 선수긴 하지.」

나츠리 씨가 그렇게 말하고, 「그럼.」하고 일어섰다.

「쓰레기 좀 버리고 올게. 너는 MVP 인터뷰라도 보고 있어.」

「미안해요, 나츠리.」

가는 김에 너희들 몫도 가져갈게. 나츠리 씨가 그렇게 말하기에, 미안해하면서도 나는 우리들의 쓰레기를 전해줬다. 이러니저러니 하면서도, 꽤 많이도 먹거나 마셨다. 야구를 보면 배가 고프다는 렌코의 말을 지금에서야 실감한다. 그저 응원으로 에너지를 소모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라운드에서는 MVP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받침대에 오른 선수는 결승타를 친 후지사키라고 하는 선수와, 선제점을 따고 우수 주자였던 카라스마였다. 등번호 7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제일 앞줄의 네트에 달라붙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올해 우리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일본 1위입니다.』

구장 내에 울리는 마이크 소리. 그렇게 말한 건 카라스마였다.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만, 100년만의 일본 1위까지 지금처럼 달리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가주시길 바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모자를 들고 손을 흔드는 카라스마와 후지사키에게, 아직도 많은 팬들이 남은 스탠드에서 대환성이 쏟아진다.

100년만의 일본 1위. 그건 역시, 올해 한신의 슬로건인 모양이다.

100년 전이라면 1985년. 그렇게 아득히 먼 옛날일, 이미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아니, 그래서인가. 쌓이고 쌓인 100년분의 소원은 다른 어떤 구단보다도 강할 것이 틀림없다.

「다녀왔어. 그럼, 슬슬 가볼까.」

「그래야겠네요. 오늘은 정말, 고마웠습니다.」

돌아온 나츠리 씨에게 재촉 받은 세이 씨는 일어서면서 또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뇨, 저희야말로. 즐거웠습니다.」

「네. 고마웠어요.」

가볍게 손을 마주 흔들면서, 두 사람과 헤어진다. 팬끼리 이런 만남이 있는 것도 구장 관전의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더라도, 낯선 누군가와 같이 응원이라는 목적으로 한 몸이 되어 외치는 것은 즐겁긴 하지만.

「메리, 우리도 슬슬 돌아가자.」

「그래야지. ――저기, 렌코.」

「응?」

선수의 모습이 사라진 그라운드. 인파가 떠나는 스탠드. 축제는 끝났지만, 또 다음이 있다. 이런 커다란 축제가 매일 같이 열리고 있다니,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짐을 들고 일어선 렌코에게, 나는 그라운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즐거웠어. 괜찮다면, 또 오자. 야구.」

그 말을 들은 렌코는, 전에 없이 기뻐보였다.

「그야 당연하지! 그럼 메리를 본격적인 한신 팬으로 만들어야겠는걸.」

「그것도 뭐, 생각해볼게.」

스포츠는 지금까지 딱히 흥미가 없었지만, 응원하는 팀 하나 정도는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도 짐을 들고,

 ――근처 좌석 밑에 떨어진 그것을 눈치 챘다.

「아, 이거――.」

작은 파우치였다. 아마 세이 씨가 놓고 간 물건이겠지.

주워서 확인하니, 성실하게도 밑에 작게 이름이 쓰여 있다.

《코비(虎尾) 세이》. 몸집이 작고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놓고 갔구나.」

렌코가 통로 쪽을 돌아보지만 이미 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수만 명이 몰려든 이 구장에서 그녀들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더라도, 그녀들이 언제 눈치 채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어쩌지?」

「조금 기다렸다가, 안 오면 분실물로 접수해두는 게 현명하겠지?」

이대로 놓고 돌아갈 수도 없고, 세이 씨의 연락처를 모르는 이상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츠리 씨와 세이 씨의 대화를 떠올리고, 역시 나츠리 씨가 걱정하는 것도 알겠다고 나는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결국,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눈치 못 채고 야구장 밖으로 나갔나봐. 재입장은 금지니까.」

「잃어버린 물건이 있다고 하고 들어올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어쨌든, 우리도 슬슬 가봐야지. 여기 관계자한테 맡겨두자.」

이미 스탠드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대로 남아봤자 허탕인 것은 확실했다.

파우치를 들고, 나는 렌코와 함께 계단을 올라 통로로 나갔다. 통로에 서있던 관계자에게 분실물이 있다고 건네니, 1층 사무실로 가달라고 했다.

이미 사람도 적은 통로를 걷는다. 음식점도 거의 영업을 종료했다. 그만큼이나 붐비던 구장도 인파가 빠져나가니 어딘가 휑해져서 쓸쓸함을 느낀다.

사무실은 어디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니 문득 눈에 띄는 그림자가 있었다.

출입구 근처에서 스태프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2인조가 있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나츠리 씨와 세이 씨였다.

「어라, 나이스타이밍이네.」

렌코가 모자챙을 두드린다. 그곳으로 달려가자 우리들을 눈치 챈 세이 씨가 돌아보고, 그리고 얼굴 가득 안도감이 피었다. 우리들이 들고 있는 파우치를 본 모양이다.

「이거, 그쪽 거죠?」

「아아, 맞아요, 제 거예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내가 건넨 파우치를 받아들고 세이 씨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나 참, 몰랐던 나도 나지만, 진짜 너란 녀석은.」

뒤편에서 나츠리 씨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그 얼굴 역시 안도감이 떠올라서, 뭐라고 하든 걱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송구스러울 정도로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는 세이 씨. 그렇게까지 정중하니, 왠지 이쪽이 나쁜 짓을 저지른 기분이 든다.

「아, 그러면―― 맞아. 괜찮으시다면, 식사라도 어떠세요?」

파우치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세이 씨는 그렇게 말했다.

「답례로, 맛있는 음식이라도 대접해드릴게요.」

나와 렌코는, 무심코 마주보았다.





      五

「코비 세이에요. 《세이》는 한자로 별(星)이라고 써요.」

「이렇게 작은 주제에, 이름만은 꽤 호들갑스럽다니까, 너.」

「나츠리! 키, 키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구장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은 돌아가면서 저녁을 먹으려는 손님들로 활기찼다. 그 한편에서 나와 렌코는 세이 씨, 나츠리 씨와 마주보며 앉았다.

「노하라(野原) 나츠리. 여기 쬐끄만 선배의, 충실한 후배야.」

나츠리 씨가 그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모르겠다. 의외로 세이 씨가 연상일지도 모르고, 말투는 단순히 두 사람의 버릇이나 친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기소개를 하자, 세이 씨는 역시 내 이름을 발음하는 게 어려운지 되물었다. 「메리라고 부르셔도 괜찮아요.」이럴 때면 항상 하는 말.

「유학생? 이라고 하기는 일본어가 엄청 능숙한데. 격세유전의 혼혈인가?」

「……네 맞아요.」

정답이다. 내 금발이나 옅은 색소의 눈동자색은, 친가 쪽 조부의 격세유전이다. 혼혈 2세인 아버지는 일본인인 조모와 닮았고, 어머니도 순수한 일본인이니까, 나는 양친과는 안 닮았다. 어렸을 때는 내가 정말 친자식인가 의심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군. 우리 선조 쪽도 거슬러 올라가면 동유럽 쪽 피가 섞여있다고는 하던데.」

길게 땋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나츠리 씨가 중얼거렸다.

――왠지 이 사람, 렌코와 닮은 기색이 있다.

「어쨌든 우선 건배해요. 술은 아니지만.」

세이 씨의 말에, 먼저 나온 음료수 컵을 들었다.

「선창은 맡길게.」

「네, 그럼―― 오늘의 만남과, 한신의 승리에, 건배.」

짠, 하고 컵이 소리를 냈다. 진저에일을 입에 대자, 구장에서 응원하는 동안 말랐던 목에 기분 좋게 스며들어왔다.

「어쨌든, 오늘도 카라스마가 해냈죠.」

「난 첫 회에 나카모리가 훌륭히 막은 게 분기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초반에는 부진한 사키에를 잘 서포트했잖아, 그게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솔로 홈런 2개를 견뎌낸 사에키도 정말 잘했죠. 오늘 멋진 시합이었어요.」

여자 세 명이 모이면 접시도 깨진다던데, 한신 팬 3명은 바로 오늘 시합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한다. 잘도 그렇게 세세한 플레이까지 기억하고 있다. 마치 이곳에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는 것 같은 기세로 말하고 있다.

「메리는 어땠어? 누가 인상 깊었어?」

내가 혼자 회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걸 눈치 챘는지, 렌코가 내게 묻는다. 시합을 떠올렸다. 선제점이나 결승점이 뜬 장면은 물론, 곁에서 렌코나 세이 씨가 난리를 피던 것까지 인상에 남아있지만――.

「누구, 라기 보단, 야구는 느긋하게만 보였는데, 전략적인 스포츠라고 알게 됐어.」

중계 영상으로 보는 야구는 사이사이 틈이 길어서 한 시합에 3시간 이상도 걸리다니 느긋하구나 싶었지만, 야구장에서 실제로 선수의 움직임을 보니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이유가 있다고 깨달았다.

확실히 축구나 농구에 비해서는 매우 움직임이 적은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수비진에는 어떤 패턴이 있어서, 그 미묘한 차이가 안타와 범타를 가르는 것을 봤다. 2루수가 움직이지 않아 1루 측의 타구를 잡을 수 없었던 일도 있고, 역으로 투수의 강렬한 송구가 정면 세컨드의 땅볼이 되기도 했다. 즉 그것들이 확률과 합리성을 규명한 전략과, 그에 대항하는 기술이 뒤섞이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야구의 규칙은 복잡해서 문외한인 내가 기억할 정도가 아니다. 그렇게 세세하게 정한 짜임새 안에서 최선의 한 수를 규명해나가는 감각은 매우 일본인적이다. 이 나라에서 야구가 영원히 사랑받는 것은 그렇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뉴스 같은 데선 멋진 홈런 정도만 나오니까 잘 몰랐는데, 치밀하고 지적인 게임이었어. 렌코가 말하는 것도 알 것 같아.」

「아 뭐, 화려하고 호쾌한 홈런 공세도 야구의 묘미기는 해.」

눈을 깜빡거리더니, 렌코는 작게 쓴웃음 지었다.

「그런 건 도쿄 구단에 맡겨야지. 찬스를 놓치지 않고, 투수력으로 지키면서 이기는 것이 한신 야구다. 메리 씨, 한신 팬 소질이 있는데.」

나츠리 씨가 즐겁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뇨, 그냥 문외한의 생각일 뿐이니까…… 실제로 해본 적도 없고.」

「그런 거라면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문외한 주제에 잘난 척했나 싶어 움츠러드는 내게, 세이 씨가 웃으며 말했다.

「야구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에요. 모르니까, 하고 생각을 중단하면 그 이상 알 수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세이 씨는 물건을 잃어버려서 허둥지둥하던 모습과는 달리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둘은 몇 살쯤일까.

마침 요리가 나와서 먹는 동안에도 한신 팬 세 명의 야구 설법은 계속됐다. 지금까지 있었던 한신의 경기나, 올해 라이벌인 한큐나 메이테츠의 사정. 부상 중인 선수의 현황이나 2군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까지, 화제가 떨어지지 않는다.

렌코의 지식 폭이 넓다지만 넓고 얇은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깊이가 있다는 것은, 이 파트너에 대해서 솔직하게 감탄하는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다. 인맥이 넓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지식으로 넓은 인맥을 얻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미스터리만 읽어서 치우친 지식에 빠져있는 나로서는 흉내 낼 수 없다.

박식, 괴짜, 신출귀몰. 그리고 무엇보다 별난 것을 좋아한다는 점.

곰곰이, 파트너는 정말 명탐정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六

그 이후로도, 렌코는 이따금 야구로 나를 초대했다.

그렇지만 티켓 요금이나 전철비도 만만치 않기에 항상 경기장으로 가는 건 아니다. 주로 나나 렌코의 방에서 함께 중계를 관전한다.

렌코는 제대로 유니폼을 입고 구장 스타일로 응원했다. 의리 있지만, 나까지 그에 어울리는 건 좀 어떤가 싶다. 방에서 한신 유니폼을 입고 메가폰을 두드리는 모양새는 옆에서 본다면 바보취급 당할 것 같다.

그리고 가끔은 경기장으로 간다. 코시엔의 티켓은 좀처럼 얻을 수 없어서 가는 곳은 주로 근처 경기장인데, 한큐 버팔로스의 본거지인 니시쿄고쿠 돔이었다. 한큐의 본거지라면서 원정 팀인 한신 팬이 더 많은 건 어째서일까. 경기장을 물들이는 팬의 색깔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세이 씨와 나츠리 씨를 만나는 일도 있다.

두 사람은 나라에서부터 애써 오는 모양이다. 여전히 세이 씨는 어딘가 허둥지둥하고 있고, 그런 그녀에게 나츠리 씨는 친근하게 쓴웃음 짓는다.

「평소에는 성실하고 우수하지만 말이야.」

내야자유석에 함께 앉았을 때다. 「제대로 혼자 사올 수 있어요.」라고 우기면서 소시지와 팝콘을 사러 가는 세이 씨를 배웅하고, 나츠리 씨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웃었다.

「자기가 무엇을 어디에 가지고 있는지 어디에 두었는지, 이런 거에 대한 기억력이 극단적으로 나빠.」

수고스러운 선배야, 라면서 웃는 나츠리 씨의 얼굴은 그래도 조금은 기뻐보였다. 그녀는 세이 씨가 의지해주는 것이 기쁠지도 모른다.

「근데, 늦는걸.」

통로 쪽을 돌아보면서 나츠리 씨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을 기다린 듯이 나츠리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네―― 아 정말, 알았어.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전화를 끊고 나츠리 씨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일어난다.

「역시. 티켓을 잃어버렸다고 울먹이던데.」

무심코 우리들도 쓰게 웃었다. 갔다 올게, 나츠리 씨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갑작스러운 타격음.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리자 하얀 공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날아오는 파울 볼에 글러브를 든 관객들이 손을 뻗는다. 우리들 머리 위를 넘은 하얀 공은 위쪽의 좌석에 부딪치고 튀어 이쪽으로 날아왔다.

쾅, 하고 공은 정확히 나츠리 씨가 앉아 있던 좌석에 떨어졌다.

우리 옆자리다. 30센티만 비꼈어도 내가 맞았을 것이다.

「우앗, 메리, 괜찮아?」

「어, 어어.」

무심코 삼킨 숨을 내쉬면서 공을 주웠다. 경구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이런 공이 날아와서 부딪쳤다면 크게 다쳐도 이상하지 않다. 야구관전은 의외로 위험하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세이 씨가 나츠리 씨를 부르지 않았다면 나츠리 씨의 머리를 이 공이 직격할 가능성도 있었을까?

――설마, 세이 씨가 그걸 알고 불렀을 리도 없겠지만.

「괜찮으세요?」

경기장의 관계자가 달려왔다. 우리들이 끄덕이자 관계자는 「공은 아무쪼록, 기념으로 가져가셔도 됩니다.」라면서 웃었다.

「괜찮을까.」

「원래 그런 거야. 모처럼 가지고 가자.」

「그럼, 렌코 줄게. 한신 선수가 때린 공이니까.」

가져가면 짐만 될 것 같다는 본심은 숨기고, 렌코에게 공을 건넸다.

렌코는 그런 내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 고마워 메리.」하고 웃었다.

「나 참, 어떻게 해야 통로랑 거리 사이에서 티켓을 잃어버리는 거야.」

「……우우.」

한숨을 쉬면서 어깨를 으쓱이는 나츠리 씨와, 그 옆에서 점점 작아지는 세이 씨가 돌아왔다. 아무래도 무사히 티켓을 찾은 모양이다.

「다녀왔어.」

「위험했어요.」

자리에 앉는 나츠리 씨에게 렌코가 말했다. 「응?」하고 나츠리 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침 여기 파울 볼이 날아왔어요. 바로 그 자리에.」

공을 보여주면서 말하는 렌코에게 나츠리 씨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선배의 바보짓이 없었으면 내가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거?」

「바, 바보짓이라고 하지 마요!」

「아니, 네 바보짓도 도움 될 때가 다 있네.」

「……너무해요, 나츠리.」

소시지를 입에 물고 뾰로통해지는 세이 씨에게 나츠리 씨는 즐겁게 웃었다.





      七

대학의 긴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이 되자, 리그도 마침내 마무리 되는 중이다.

여름동안에 메이테츠가 힘을 잃고 탈락했기에 센트럴리그의 우승은 한신과 한큐의 정면승부가 됐다. 그러니 니시쿄고쿠 돔의 한신한큐전도 연일 만원, 직접 보러 가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티켓을 못 구하겠다면서 한탄하는 렌코와 함께 방에서 중계를 보는 것이 당연시됐다.

렌코는 세이 씨와 나츠리 씨와는 연락을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렌코의 묘한 인맥은 또 넓어졌구나 싶었지만, 나도 그런 렌코와 지내고 있다.

결국 엎치락뒤치락하던 센트럴리그의 우승자가 결정되는 것은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 두 시합만 남은 10월 중순이었다.

「나, 하나 굉장히 다행인 게 있어.」

「뭔데? 메리.」

「렌코가 니가타까지 나를 데리고 가지 않는 거야.」

결승전까지 1승을 남긴 한신은 이 날 니가타에서 니가타 스왈로즈와 싸우고 있다. 시합은 에이스인 사에키가 선발되고 카라스마의 홈런으로 얻은 1점을 지켜가는 전개가 되고 있다.

「티켓만 있으면 갔겠지.」

「니가타까지?」

「당연하지. 우승을 결정짓는 일전이니까!」

아직 모르잖아, 라고 말하진 않는다. 남은 두 시합에서 양 팀은 한 게임 차이다. 한신이 무승부가 적으니 게임차가 없게 되면 승률로 웃돌기에, 이 시합에서 이기면 우승은 정해지겠지만――.

7회가 끝나고 시합은 1 - 0인 채로 교착상태다. 상대인 니가타는 이미 최하위인 모양이지만, 이번 시즌 첫 선발인 신인 투수에게 한신 타선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15승을 앞두고 방어율 2점대 전반으로 분투하고 있는 사에키도, 지금까지의 피로 때문인지 오늘은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미 몇 번이나 위기를 맞았고, 상대의 취약한 공격에 근근이 도움 받으며 버티고 있다. ――이런 걸 아는 척하면서 말하게 된 것도 렌코한테 완전히 전염된 결과겠지만, 어쨌든.

8회, 한신은 선두 타자가 출루했지만 후속은 잡혀 무득점으로 끝났다. 그리고 마운드에서 에이스 사에키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아, 유우키입니다! 수호신 유우키가, 8회에서 마운드에 오릅니다!』

벤치에서 나온 등번호 22번에 중계자가 외쳤다. 렌코가 말했던 『후지카와 2세』, 약 80년 전에 한신에서 부동의 투수로서 군림했던 선수의 등번호를 계승한 그가 마운드에 섰다. 구장의 한신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곁의 렌코도 외쳤다.

「유우키―! ……어, 코노도 나오잖아!」

수호신의 등판이 클로즈업되는 옆에서, 렌코가 좋아하는 코노라는 선수가 삼루의 수비로 들어간 것이 곁다리로 비추었다. 뭐, 수비선수의 취급이란 저런 거겠지. 하지만 렌코는 그만큼으로도 기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다.

어쨌든, 니가타의 공격은 9번부터였다.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타순이 1번으로 돌아온다. 카라스마와 도루왕을 다투고 있는 니가타의 1번 타자는 세이프 번트를 시도했다.

삼루로 약하게 구르는 타구. 투수는 잡지 못했다. 타자는 1루로 질주한다.

――하지만 공으로 사납게 달리는 삼루수가 있었다.

「코노!」

렌코가 비명처럼 외쳤다. 코노가 공을 맨 손으로 잡았다. 그대로 일루로 던진다. 총알 같은 송구가 일루수의 미트에 들어간다. 타자가 일루를 지나친 것과 거의 동시.

심판이 한 박자 틈을 두고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아웃.

「코노오오! 최고―!」

옆에 있는 나를 안으면서 렌코는 갈채를 보냈다. 풀어버릴 수도 없고, 나는 당한 채로 귓전에서 떠드는 렌코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의 아웃에는 나도 신이 났지만, 렌코의 비상한 환호에는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팬이라는 생물은 큰일이다.

유우키는 2번 타자도 내야 땅볼로 잡고, 시합은 9회로 들어간다. 니가타의 투수는 여기까지 1실점의 루키로 변함없다. 한신의 공격은 투 아웃을 당했지만, 1번인 나카모리가 내야 안타로 출루하고, 2번인 타니모토가 우측 앞을 친다. 나카모리가 달려서 삼루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투 아웃에 만루.

타석에 들어서는 3번 카라스마. 3년 연속 우수 타자가 확실한 한신 타이거즈 최강 타자.

눈치 채고 보니 렌코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기도하는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다.

투 스트라이크 원 볼, 4구째. 때려 맞춘 타구는 삼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깊이 구른다.

니가타의 유격수가 돌아서 공을 던진다. 카라스마가 1루로 달린다. 2루는 늦다. 유격수는 일루로 송구. 카라스마가 1루를 앞지른다. 심판은 양 팔을 벌렸다. 렌코가 천장을 올려보고, 털썩 그 자리에서 뒤로 엎어졌다.

3루 주자는 홈으로 돌아왔다. 시기적절한 내야 안타, 2 - 0이다.

「레, 렌코, 괜찮아?」

「……미안, 최고야. 나, 한신 팬이라서 다행이야.」

「아직 시합 안 끝났어.」

감격하며 중얼거리는 렌코에게, 나는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현실로 돌아와서.

렌코를 절망의 늪으로 빠트리는 9회말 대역전극――은 일어나지 않고, 한신의 수호신 유우키는 깔끔하게 셋을 보내고 시합을 끝냈다. 마지막 타자가 헛스윙 삼진으로 아웃된 순간 구장은 종이 눈이 춤추고, 마운드의 유우키에게 한신 선수들이 달려갔다.

그리고 렌코는.

「아아――끝났구나.」

이제까지의 광란은 어디로 갔는지 조용하게 화면을 응시했다.

「축하해, 렌코.」

「……아니, 아직이야, 아직. 이제부터 일본 시리즈가 있으니까. 거기서 이겨서, 100년만의 일본 1위, 그때까지는 끝이 아니야.」

그렇게 냉정하게 중얼거리면서도 얼굴은 미소가 번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나는 그런 옆얼굴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감독이 헹가래 되는 화면을 보고 일어섰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렌코에게 내민다.

「여기까지 어울렸으니, 축배도 어울려줄게.」

「어머, 메리. 눈치도 빠르다니까.」

받은 캔 맥주를 따고 우리는 작은 축배를 올렸다.

화면 속에서는 한신 선수들의 환희가, 쭉 계속 흘렀다.





      八

그리고, 일본 시리즈.

프로야구는 간토이북의 팀이 모이는 퍼시픽리그,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센트럴리그, 그리고 효고이서(兵庫以西)의 팀이 모인 웨스턴 리그의 3리그 제도다. 그 세 리그의 우승 팀과 가장 승률이 높은 2위 팀이 와일드카드[각주:2]로서 일본 시리즈에 진출한다. 올해의 퍼시픽리그를 제패한 것은 세이부 라이온즈, 웨스턴리그는 히로시마 카프였다. 그리고 와일드카드로 지목된 팀은 한신과 마지막까지 우승을 다툰 한큐 버팔로스였다.

5전 3선승제의 준결승, 상대는 세이부. 한신은 3승 1패로 세이부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히로시마 대 한큐는 3승 2패로 한큐가 이겼다.

「설마 마지막까지 한큐하고 겨룰 줄이야…….」

「괜찮을까? 페넌트에서는 이긴 것보다 진 게 더 많았잖아.」

「괜찮아. 올해야말로 이겨, 분명.」

렌코는 그렇게 단언했지만, 어쩐지 나는 나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연락이 렌코에게 도달한 것은, 다음 날부터 결승이 시작하는 금요일이었다. 덧붙이자면 결승은 7전4선승으로 일본 1위가 된다.

「잠깐잠깐, 큰일이야 메리!」

「뭐야, 렌코. 한큐가 결승을 사퇴하기라도 했어?」

「아니야. 방금, 그 둘한테서 연락이 왔어.」

「둘이라니.」

「세이 씨랑 나츠리 씨.」

오랜만에 들은 이름이었다. 요즘 야구장에 갈 수 없었으니, 그 두 사람과 꽤나 만나지 못했다고 새삼 깨달았다.

「그 두 사람이 왜?」

「그게 있지―― 티켓이 남았대. 게다가, 2장.」

「티케이라니.」

「일본시리즈 결승 일곱 번째 경기래!」

흥분해서 몸을 내미는 렌코에게, 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래서, 2장 필요 없냐더라.」

「자, 잠깐만 렌코. ――남은 2장, 일곱 번째라고?」

「그래. 갖고 있던 아는 사람이 그 날 사정이 있어서 못 가게 됐대, 그래서 우리들한테 양보해준다는 거야! 아아 메리, 역시 친구는 있고 볼 일이라니까! 그렇지 않아!?」

당장이라도 날뛸 텐션인 렌코였지만, 나는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렌코, 그 티켓 쓸 수도 없을 가능성도 높지 않아?」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일본 시리즈 결승은 4선승이고, 어느 쪽이 먼저 4승을 한다면 그 다음 시합은 열리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어느 쪽이 4연승 해버리면 네 시합만으로 끝난다.

일곱 번째 경기가 성사되려면 무승부가 없다고 했을 때, 패턴은 하나밖에 없다.

즉, 3승 3패의 경우밖에 개최되지 않는 시합이다.

「그런 건 사소한 문제야, 메리. 봐, 우리들이 역사의 산 증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이 이상 좋은 일은 없잖아!」

뭐 하긴, 최종전이니까 어느 한쪽이 이겨도 일본 1위를 결정짓는 경기긴 하다.

――한신이 4연승하면, 렌코는 어떤 얼굴을 할까.

나도 모르게 그런 욕심뿐인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야구의 신은 어쩐 일인지 렌코에 대해서는 자비심이 깊었다.

본거지인 코시엔에서는 연승했던 한신이었지만 한큐의 본거지인 니시쿄고쿠 돔에서는 3연패, 남은 경기를 위해 코시엔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6번째 경기를 치루면서 역전해 정말로 3승 3패로 코시엔에서의 7번째 경기를 치르게 됐다.

「82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이런 일이라니?」

「전부 홈 팀이 이기는, 말하자면 안방연승 시리즈.」

과연 그 날 찾은 코시엔 구장은, 일종의 괴상한 분위기로 가득 차있었다. 항상 한신 팬으로 가득한 코시엔도 오늘만큼은 한큐 팬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때도 한신이었어?」

「응, 상대는 다이에…… 지금의 후쿠오카 호크스 말이야.」

「80년 전이라면, 졌겠구나.」

「그 해는 코시엔에서 세 시합이었어. 근데 올해는, 여기서 네 시합.」

「그러니까 올해는 한신이 일본 1위, 라는 거지.」

사람으로 들끓는 구장의 통로를, 손을 잡고 걷는다. 우리들의 좌석은 내야석이다.

티켓을 준 세이 씨와 나츠리 씨도, 지금 코시엔에 와있다. 입장 전에 만나서 감사를 전했다. 두 사람은 오늘 외야석을 차지했다.

 『비사문천께 참배도 했어요. 필승기원으로요.』

세이 씨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비사문천의 사자는 호랑이(虎)였다.

「……어쩐지 긴장돼.」

「메리가 긴장해서 어떡해.」

「렌코도 떨리잖아?」

맞잡은 손을 다시 고쳐 잡으면서, 우리들은 통로를 빠져나와 스탠드로 나왔다.

가을 밤하늘 아래 새하얗게 비추는 그라운드에, 아직 선수들의 모습은 없다.

그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야구팬들은 어쩐지 살기조차 느껴질 정도로 좌석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다.

――한큐가 이기기라도 하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무심코 든 생각에 고개를 흔들어 떨쳐냈다.

여기까지 왔다. 역시 한신이 이겼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한신이 일본 1위가 되어서 기뻐하는 렌코의 얼굴을 보고 싶다.





      九

시합은 자웅을 겨루는 최종장에 어울리게 긴박한 전개가 되었다.

양 팀의 선발이, 3회까지 함께 1안타로 그쳤다. 화려하게 맞붙었던 전날과는 돌변한 투수전의 기색이 맴돈다.

이런 시합이 생각지도 못한 전개가 된 건 4회 초였다.

한큐의 선두 타자가 출루하고, 번트로 진루해서 1아웃에 2루. 다음으로 4번 타자는 한신 선발의 요시토미가 던진 5번째 공을 높이도 쏘아 올려 레프트 플라이로 넘어갔다――하지만.

글러브에 공이 꽂혀 투 아웃. 구장의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뭔가 상태가 이상했다. 심판이 양손을 들고 스코어보드의 아웃 카운트를 변경하지 않는다. 그리고 2루 주자가 어쩐지 3루를 향해 걷고 있다.

웅성거리는 스탠드를 향해서 심판이 마이크를 들고 외쳤다.

『현재 플레이에 대해 설명 드립니다. 요시토미 투수의 세트 포지션이 정지하지 않았기에, 보크로 판정하고, 주자가 진루해서 원 아웃에 3루, 투 스트라이크 투 볼에서 다시 재개하겠습니다.』

한신 팬들로부터 비명이 터졌고, 한큐 팬으로부터 환성이 울렸다.

「뭐, 뭐야 그게! 보크라니――」

「……뭐라는 거야?」

「그러니까, 투구 전에 결정했던 동작을 위반했다는 거야. 보크를 저지르면 주자는 자동적으로 진루하게 돼. 그래서 지금 플라이 아웃도 없던 게 되는 거야.」

여전히 야구의 룰은 어렵다. 지금까지 렌코와 함께 많은 시합을 봤지만, 본 적도 없는 룰이 지금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한신 감독이 항의하러 나오지만 판정은 뒤집히지 않았다. 원 아웃 3루에서 시합이 재개되고, 한큐의 4번은 재차 던진 다섯 번째 공을 다시 높이 쏘아 올렸다.

비슷한 레프트 플라이. 하지만 주자가 2루와 3루에 있을 경우에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주자가 터치 업. 공이 돌아오지만 송구는 빗나갔다. 주자가 홈에 미끄러져 들어온다. 다시 한신 팬의 비명과 한큐 팬의 환성이 뒤얽혔다. 스코어보드에는 숫자 1이 새겨졌다. 한큐, 선제점.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렌코는 멍하니 「19시 5분 21초」라고 중얼거렸다.

달과 별은 조용하게, 지상 인간들의 광태를 선명하게 비추고 있다.



겨우 1점, 하지만 1점.

생각하지도 못한 모습으로 한큐에게 굴러들어가 선제점이, 이 시합에는 너무나 무겁게 영향을 끼쳤다.

6회 말에는 1아웃 1루, 3루의 찬스를 한신이 만든다. 하지만 4번 후지사키의 세컨드 땅볼로 홈으로 돌진한 니카모리가 아웃당해, 한신은 동점을 만들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100년만의 비원이 여기서 무너지는 건가――비장감이 한신 팬들 틈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8회 초, 요시모토가 강판을 하고 셋업의 우에다가 마운드에 올라가, 한큐 타선을 무찔렀다. 시합은 1 - 0인 채로 8회 말에 들어갔다. 한신의 공격은 앞으로 2번.

구장은 점차 기묘하게 조용해졌다. 저릿해질 정도의 긴장감 속, 원 아웃에서 중견수 안타로 출루한 나카모리가 과감하게 도루를 시도해 한신 팬이 끓어올랐다.

타니모토는 끈질기게 파울을 계속하고 11번째 공을 골라내서 포 볼. 원 아웃에 1, 2루.

――그리고 역시, 스타 선수다운 장면이 찾아온다.

「카라스마―!」

옆에서 렌코가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도 한신 팬의 환성에 말려 사라진다.

지진과도 같은 성원 속에, 침착하게 타석에 선 등번호 7.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도망치고 싶을 텐데도, 카라스마는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2구를 버리고―― 3구째를, 기다렸다는 듯이 휘둘렀다.

하얀 공이, 이번에는 한신 팬의 환성과 한큐 팬의 비명을 가르면서 날아간다.

중견수와 2루수가 뒤쫓는다. 그 사이를 나는 공은, 중견수가 전력으로 뛰면서 뻗은 글러브를 미끄러져서―― 잔디 위에 떨어졌다.

일순, 소리가 사라졌다고 착각할 만큼의 환성이 터졌다.

2루의 나카모리가 유유히 홈으로 돌아오고, 1루의 타니모토가 포수의 터치를 빠져나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옆을 돌아보니, 렌코가 감격해서 울고 있다.

「아직 안 끝났어, 렌코.」

「알아, 나도 알아――.」

손수건을 내밀자, 렌코는 정중하면서도 성대하게 코를 풀었다.



그리고 9회 초. 마운드에 오른 사람은 당연히 절대적수호신, 유우키였다.

렌코가 좋아하는 코노도 삼루 수비에 들어갔다. 100년만의 비원을 향해 완전하게 필승 태세로 들어간 한신. 응대하는 한큐, 3번부터인 절호조의 타순으로 최종회를 준비한다.

한 번 던질 때마다 스탠드가 시끄러워지고 열기가 올랐다. 그 분위기에 휩쓸리듯이 3번 타자는 삼진을 맞고 물러났다. 남은 건 두 사람.

4번은 그 분위기를 떨치려고 하는 듯이 첫 공에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타구는 중심을 벗어나 3루 땅볼이 된다. 명수인 코노가 공을 글러브로 잡아 1루로 송구한다. 이제 한 명만 남았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명수 코노의 손에서 하얀 공이 떨어졌다. 배후로 떨어진 공을 당황하며 줍지만 이미 늦었다. 던질 것도 없이 타자는 일루로 뛰어들었다. 한신 팬이 숨을 삼키고, 코노는 3루 앞에서 멍하니 서있다. 전광게시판에 에러를 나타내는 E의 불빛이 들어왔다.

「코노――.」

100년만의 비원, 그 중압감이 명수마저 짓누른 것인가.

아마도 이 구장 누구보다도 그 수비수를 응원했던 렌코 역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예감은, 가끔 적중한다.

한큐의 5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왔다.

유우키가 첫 공의 세트 포지션을 하고――던졌다.

날카로운 소리가, 밤하늘에 높이 울려 퍼졌다.

한신의 수비수는, 이미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하늘 높이 오른 흰 공은 도대체 어떤 인과 때문인지――한신 팬으로 가득 찬 라이트 스탠드로 쭉쭉 뻗어간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스탠드로 떨어져 높이도 튀어 올랐다.

3루 측 한큐 팬의 환성이 폭발했다.

1루 측의 한신 팬은 누구나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못했다.

마운드의 유우키가, 수비수들이, 공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 라이트 스탠드를 올려본다.

그리고――렌코는

믿기지 않는다, 는 얼굴로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나는 그 옆모습에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9회 말,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합결과 3 - 2.

4승 3패로 한큐 버팔로스는 와일드카드로 22년만에 일본 1위에 올랐다.

한신 타이거즈 100년만의 비원은 그날 밤, 덧없는 환상처럼 사라졌다.






      十

뭐, 한신이 일본 1위를 놓쳤다고 해서 세계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코시엔에서 돌아가는 동안 말도 걸지 못할 정도였던 렌코도 며칠 후에는 깔끔하게 회복했다. 어쨌든 페넌트 레이스는 내년에도 있으니까 내년을 위한 전력보강 등의 이야기를, 딱히 말할 것도 아닌데 열심히 했다.

야구팬들은 정말 업이 깊은 생물이라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던 가운데 한 가지 뉴스가 내 눈에 미친 것은, 렌코가 막 회복했을 무렵이었다.

『한큐, 일본 1위를 결정한 홈런 볼을 「지명 수배」』

그런 제목으로 전하는 것은, 한큐 버팔로스가 그때 일본 시리즈 결승 일곱 번째 경기에서 스탠드로 사라진 결승점의 홈런 볼을 찾고 있다는 뉴스였다.

스탠드에 있던 누군가가 가지고 갔는지 홈런 볼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기념으로 삼을 공이기에 가져간 사람은 구단에 연락해달라는 내용이다.

「있지, 렌코.」

「응?」

장소는 대학의 카페테라스. 나는 모바일 화면을 렌코 쪽으로 돌렸다.

렌코는 뉴스를 들여다보고는, 가볍게 웃었다.

「이거, 아예 딴 공을 『이겁니다』하고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판별할까?」

예를 들어서 내야 스탠드에서 주운 파울 볼을 그 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렌코는 코를 울렸다.

「흥, 그 시합 외야 티켓 같은 게 증거가 되지 않을까. ――그보다.」

내 물음에 매우 무책임하게 대답하고, 렌코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어떻게 된 걸까?」

「어?」

렌코의 말의 의미를 몰라 나는 눈을 깜빡였다.

「공을 찾지 못했다, 라는 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데?」

「어떻게냐니――」

기사에 써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가지고 갔겠지. 그래, 주운 팬이.

「잘 생각해봐 메리. 그 시합의 전개와, 홈런이 꽂힌 장소를.」

듣고 보니, 앗, 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 시합, 결승점이 된 홈런이 날아든 곳은 라이트 스탠드다. 한신 팬으로 가득 찬 그 한가운데에 홈런 볼이 쏘아진 것이다.

그 홈런 볼은 단순한 홈런 볼이 아니다.

한신 타이거즈 100년의 비원을 깨부순, 한신 팬에게 있어서는 악몽과 다를 게 없는 타구다.

「……거기에 한큐 팬이 있었다던가.」

「그럴 리가. 그 때 라이트 스탠드에 있던 건 100퍼센트 한신 팬이야.」

그야 그렇겠다. 그런 상황에서 한신 팬 일색인 라이트 스탠드에 의미도 없이 기어들어가는 한큐 팬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안 그래도 입수하기 어려웠던 일본 시리즈 결승 티켓이기도 하니까.

「한신 팬의 누군가가, 그 공을 가지고 돌아간 거야. 그라운드로 던져서 돌려보내지도 않고, 그 악몽의 홈런 볼을 가지고 돌아갈 이유는 없잖아.」

고개를 흔들면서 렌코는 한숨을 쉬었다.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는 않겠지.

「그럼―― 공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분명히, 야구의 신이 숨겼겠지.」

모바일을 닫으면서 렌코는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면서 중얼거렸다.

「하다못해 한신 팬에게의 자비로서. ――아 진짜, 생각나게 하지 마.」

불쾌하게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렌코는 커피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조금 세게 두드렸다.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다. 나는 모바일을 거두면서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문득, 같은 한신 팬의 지인을 떠올렸다.

――그때 외야석 라이트 스탠드에 있었을 세이 씨와 나츠리 씨.

그녀들은 그 홈런을 어떤 심정으로 올려보았을까.





      十一

일본 시리즈가 끝나고 프로야구는 오프시즌으로 돌입했다.

탈퇴나 이적, 신입 선수의 영입, 계약 개정 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시합은 내년 봄까지 열리지 않게 됐다. 긴 겨울방학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메리, 이번 주 일요일, 같이 코시엔 갈까?」

11월도 절반을 지났을 즈음, 렌코는 또 그렇게 말했다.

「……이미 야구는 끝났잖아?」

의심쩍게 되물었다. 아니면 프로야구 이외의 것인가.

「시즌은 끝났지만, 이벤트가 있어.」

「이벤트?」

「즉, 팬 감사제라는 거지.」

티켓을 꺼내들면서, 렌코는 웃었다. 당연하게도 두 장이다.

「제대로 된 팬도 아닌 내가 갈만한 이벤트가 아닌 것 같은데.」

「딱딱한 말 하지 마. 그리고, 제대로 되고 말고도 없어. 메리, 지금까지 나랑 같이 한신 응원했잖아?」

「렌코 옆에서 메이테츠 드래건즈를 응원할리도 없잖아.」

「언제 메이테츠로 전업한 거야? 메리랑 적이라면 쓸쓸하겠네.」

「먼 밤하늘에 메아리치는 용의 울음소리가 들렸거든.[각주:3]

「롯코오로시[각주:4]가 더 가까이서 들리잖아, 여기서는.」

정말, 평소처럼 쓸모도 없는 회화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한숨을 쉬었다.

「렌코도 참, 나 말고 한신 팬 친구 없어? 그렇게 발도 넓으면서.」

「정말,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야 메리.」

지그시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면서, 렌코는 또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난 메리랑 같이, 가고 싶다는 거야.」

――아마도 나는, 렌코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심은, 물론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겠지만.

「팬 감사제라니, 뭘 하는 거야.」

「여러 가지야. 선수의 퍼포먼스라던가, 팬 참가 이벤트라던가, 사인회라던가.」

「코노 사인이라도 받으러 가는 거야?」

「그건 당연하지. 색지도 이미 챙겨뒀어.」

일본 시리즈에서 통한의 에러가 있어도, 역시 렌코는 마음속으로 코노라는 선수는 특별한 그대로일 것이다. 팬이라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메리가 준 파울 볼도 있으니까.」

「……아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우리들의 좌석 근처로 날아온 파울 볼. 나는 그것을 렌코에게 주었다.

「모처럼이니까, 그걸로 사인이라도 받아둘까 싶기도 해.」

「괜찮은데? 레귤러가 되면 프리미엄이 붙을지도.」

「――언젠가 그렇게 될 거리고 믿은 지 몇 년째인지.」

수비선수로서의 코노가 좋다고 해도, 역시 속으로는 스타팅 멤버로 활약해주길 바라겠지. 정말, 몇 년이나 렌코에게 일심단편으로 응원 받다니―― 조금은, 질투가 난다.

물론 그런 생각도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커피라도 끓여올게.」

학교가 끝나고 같이 저녁밥을 먹은 뒤에 수다 떨면서 걸으니, 왠지 모르게 그대로 렌코의 맨션까지 가게 됐다. 뭐, 내가 렌코의 방을 방문하는 건 대부분은 렌코가 불러서거나 흐름을 타서니까, 평소대로라면 평소대로다.

꼼꼼하게 정돈된 방에 발을 들여놓자, 내 방도 조금은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 렌코가 방에 오는 일도 없어서 조금 지저분하다. 타인의 시선이 없으면 금방 흐트러지고 만다.

「메리, 모카랑 킬리만자로 중에 뭐가 좋아?」

「아무 거나.」

부엌에서 말을 거는 렌코에게 대답하고 나는 쿠션을 깔고 앉았다.

그리고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그것을 응시했다.

야구공이다. 근데 왜 이런 게――하고 목을 갸웃하다가 렌코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 구장에서 주웠던 파울 볼인가.

공을 들어본다. 역시 딱딱하다. 시속 150킬로로 날아가는 이 작은 공을 그렇게 가느다란 방망이로 맞추다니, 대체 어디의 누가 생각했을까. 근데, 이렇게 단단한 볼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다면 보통이면 무서운 게 당연하다. 내야석에 날아든 파울 볼도 위엄해보였고, 타석에 그것을 쳐야 하는 선수란 대단하다.

「……어라?」

손바닥 위에 공을 굴리다가 문득 공의 감촉에 위화감을 느끼고 손을 멈췄다. 손가락으로 쓰다듬자, 위화감의 원인을 바로 깨달았다.

볼 표면에 작은 상처가 나있다.

그때 렌코가 기념으로 가지고 갔던 공에 스스로 상처를 냈을 리도 없다. 그리고 렌코는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다. 그렇다면 방망이로 쳤을 때 생겼나, 아니면 스탠드로 떨어져서 바닥에 부딪쳤을 때 생긴 상처일지도 모른다.

――공에 상처?

문득 뭔가 떠올랐다. 언젠가 렌코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 던지는 공의 표면에 상처를――.

「렌코.」

「응? 커피 아직이야.」

「테이블 위에 이거, 그때 파울볼?」

「맞아. 아, 오늘 아침에 꺼내고 그대로였네.」

부엌에서 얼굴을 내민 렌코가, 내 손의 흰 공을 보고 작게 쓴웃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애매모호한 상상에 집중한다.

무언가가 떠올랐다. 무엇이 떠올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파울볼. 관객에게 선물. 렌코가 했던 말. ――야구의 세세한 규칙.

생각은 쉽게 정리되지 않고,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모바일을 열었다.

뉴스의 영상을 확인하니 바로 찾았다. 한신 타이거즈 대 한큐 버팔로스, 일본 시리즈 마지막 경기의 9회 초. 코시엔의 우측날개스탠드로 사라진, 한큐에게 있어서는 기적의, 한신에게 있어서는 악몽의 역전 홈런.

모두가 멍하니 서있는 관객석이 클로즈업돼있고, 그곳에 공이 떨어져 크게 뛰어올랐다.

카메라는 그 순간 주자에게 집중하려고 돌아가는 바람에 관객석의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아.」

그 영상은 렌코가 보기 싫어했으니까 제대로 본 건 나도 처음이었는데.

한 번 더 비치는 마지막 장면에, 한 가지 깨달았다.

홈런이 날아가는 우측중앙스탠드에서도 가운데 줄. ――거기서 몇 줄 아래에.

본 적 있는 자그마한 모습과 곁에 서있는 긴 땋은 머리의 누군가가 확실하게 있었다.

화면에 비치는 건 한 순간이다. 하지만 고화질로 확인하니 명백했다.

――마침 홈런의 착지점 조금 밑에, 세이 씨와 나츠리 씨가 있었다.

아니, 그 날 둘은 시합 전에 외야석에 앉는다고 말했으니까, 그런 우연도 있을 법하다. 확률은 낮지만 있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메리, 왜 그래?」

김이 피어오르는 컵을 양손에 들고, 렌코가 돌아온다. 나는 모바일의 페이지를 닫았다. 그날, 한신의 일본 1위의 꿈이 좌절된 순간의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렌코에게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잠깐 조사 좀.」

대답하면서 검색 단어를 입력한다. 정리된 페이지가 바로 떴다. 글자들을 눈으로 쫓자, 마침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을 찾았다.

그 글자들을 보고 그 날 시합의 경과를 떠올렸다.――애매했던 상상의 실타래가 간신히 풀렸다.

――만석이었던 한신 팬들 중앙에 떨어진, 한신의 우승을 날려버린 홈런 볼.

그것은 도대체, 그곳에서 어떻게, 어디로 사라진 걸까――.

증거도 뭣도 없는 상상이다. 하지만 라이트스탠드에서 공을 주운 사람이 한신 팬이라면 그 이유는.

「저기, 렌코.」

「응?」

자, 하고 내미는 컵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커피의 쓴맛은 의식의 굴레를 명료하게 해주고, 불투명했던 생각도 형태가 정리된다.

「――일요일 팬 감사제, 그 두 사람도 온대?」

「두 사람이라니, 세이 씨랑 나츠리 씨? 올 거야. 티켓 구했다고 했으니.」

「그럼, 간만인데 구장에서 만나자. 일본 시리즈 때 감사도 다시 드리고 싶고.」

「응, 그러자. 그럼 그렇게 전해둘게.」

끄덕이는 렌코가 눈치 채지 않기를 빌면서, 나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코시엔에서 홈런 볼이 사라진 이유가 만약 내 상상대로라면.

그런 불가해한 현상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은 분명.


――야구라는 스포츠의, 복잡한 룰과 다름없다.





      十二

오랜만에 둘이서 외출한 코시엔은, 변함없이 성황이었다.

한신 팬 감사제이기도 했고, 구장주변은 한신 팬 일색이었다.

――덧붙여 렌코가 팬 감사제를 위해 애써 코시엔까지 온 것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같은 날에 한큐 버팔로스가 우승 퍼레이드를 교토 시내에서 벌일 예정이었다.

이가 갈리는 한신 팬으로서는, 한큐 퍼레이드를 허심탄회하게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아, 저기 있다.」

주변을 둘러보던 렌코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세이 씨와 나츠리 씨다. 두 사람도 우리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서로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오랜만이에요.」

「네에, 오랜만이네요. 건강해보여서 다행이에요.」

「쇼크로 드러누운 한신 팬도 꽤 많았으니까요. 그때 이후로.」

평소처럼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는 세이 씨와, 어깨를 으쓱이는 나츠리 씨.

나도 인사를 건네고, 세이 씨와 나츠리 씨의 모습에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뉴스에서도 그러던데.」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그때 홈런 볼, 행방불명이라는 모양이에요.」

「아아, 저도 봤어요. 누가 가져간 걸까요?」

세이 씨와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나츠리 씨는.

「그래요, 나츠리.」

「응?」

「나츠리가 다우징으로 찾아보는 게 어때요?」

「――무슨 소리야.」

나츠리 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자 「농담이에요」 하고 세이 씨가 가볍게 웃었다.

「음, 나츠리 씨는 다우저인가요?」

「네, 물건 찾는 일은 천하일품이에요.」

「――찾는 대상의 절반은, 네가 잃어버린 거지만 말이지.」

「그,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뾰로통해지는 세이 씨와 쓴웃음 짓는 나츠리 씨의 모습에, 나는 한 번 더 자세히 살폈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혼잡한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도중에 나는 자연스럽게 나츠리 씨의 옆에 서서 작게 말을 걸었다.

「저기, 나츠리 씨.」

「응?」

「혹시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그때 홈런 볼을 가져간 건, 혹시…… 나츠리 씨인가요?」

나츠리 씨는 살짝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훗, 하고 웃으면서 미소를 띠었다.

「――왜 그런 소릴 하는데?」

부정하기보다 앞서 나츠리 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건 아마도, 무언의 긍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이 날아간 순간의 영상 밑 부분에, 두 분이 찍혀있어서――」

「……하긴, 그 홈런 볼이 우리들 바로 위에 떨어지긴 했어. 증거가 그것뿐, 은 아닌 것 같군.」

시험해보는 시선에, 나는 머뭇거렸다. 나츠리 씨는 어쩐지 유쾌하게 미소 지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듣고 싶은데.」

나는 한 번 침을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문제는, 어째서 그 장소에서 공이 사라졌는가, 라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팬이 기념 삼아 가져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안돼요. ――그 공은, 한신 팬의 비원을 깨부순 공.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한신 팬이었으니까, 기념 삼을 리가 없죠.」

「그렇군, 지당해.」

나츠리 씨는 가볍게 수긍했다. 나는 계속한다.

「그럼, 왜 공이 사라졌는지. 구장의 관계자가 찾지 못한 것은, 누군가가 가져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때, 우측 좌석에 있던 한신 팬들에게는, 그 공을 가져갈 이유가 없고.」

「역설이로군.」

「사라질 리 없는 공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전제 어디선가 잘못된 겁니다. 즉, 공은 누가 《가져갔다》가 아니에요. 아니,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공을 가져간 사람은 《가져가기》위해서가 아니겠죠.」

「구장에서 날아온 공을 주울 이유가, 그밖에 뭐가 있는데?」

「――《숨기기》위해서요.」

나츠리 씨의 눈이 조금 커졌다.

「한신 팬의 꿈을 부순 공을 주운 누군가는, 한신을 사랑해 마지않는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그 악몽의 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숨긴 거예요. 자기 품에.」

「……이상한데. 그 공을 주운 누군가도 한신 팬이겠지? 그렇다면 그럴 것도 없이, 외야로 던졌거나, 아무데나 버렸을 거 아닐까. 그런 공, 보고 싶지도 않은 건 마찬가지겠지.」

「그럴 수 없는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아마도…… 주운 공에, 상처가 있었을 테죠.」

이번에는 명확히 나츠리 씨의 표정이 변했다.

「그 시합 전반에, 한큐가 선제점을 땄을 때, 보크가 있었죠. 아웃이었던 공이, 보크가 돼서 다시 던지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그것이 선제점으로 연결됐고.」

「……아아, 그랬지.」

「한신 백년만의 비원을 깨부순 홈런. ――그때 구장의 한신 팬은, 모두들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없던 일로 하고 싶다, 라고.」

「…………그렇겠, 지」

「공에 상처가 나있었다. 그건 분명 스탠드에 떨어질 때 났을 상처겠지만, 만약 투수가 낸 것이라면 반칙이에요. 홈런이 된 공이, 반칙투구로 인했다면, 홈런은 취소가 되지 않을까. ――주운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가져가겠지. 하지만, 반칙투구건 보크건, 홈런은 취소되지 않아. 그렇더라도, 주운 사람이 한신 팬이었다면, 취소를 바랐을 거 아닌가.」

「네, 취소되지 않는다고 주운 사람도 아마 알고 있었겠죠. ――하지만, 복잡한 룰이에요. 자세히 다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죠. 그리고, 만약 그게 선수가 낸 상처라면, 반칙을 한 것은 한신의 수호신이게 될 테니.」

「…………」

「그 사람은 외야로 공을 던져 돌려줄 자신이 없었을 터. 그리고 근처 아무 데나 버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주워서 그 상처를 눈치 챈다면―― 만약이라도, 부질없는 소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수호신 유우키에게 반칙투구의 오명을 씌우면서까지, 그 홈런을 취소하고 싶어 하는 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는데도. ――그래요, 그 사람은 걱정했을 겁니다. 덜렁이인 사람을 언제나 돌봐주고 있으니까, 무심코 걱정이 지나친 그 사람은.」

구장 앞줄에 서면서 나츠리 씨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맑아, 활짝 개었다.

구장에 들어가려는 한신 팬의 혼잡. 즐겁게 웃는 소리. 그 속에서.

「――나 참, 이런 곳에 명탐정이 있을 줄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나츠리 씨는 작게 쓴웃음 지었다.

「정답이야. 확실히 그 공을 가져간 건 나야. ――덧붙이자면, 익명으로 한큐 구단 사무실에 어제 보내뒀어. 증거로 티켓이랑 같이.」

「세이 씨에게, 자기가 주운 걸 들키지 않으려고 인가요.」

「뭐, 그렇지. 세이는 그때 넋이 나가서 내가 그 공을 주운 것도 몰랐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츠리 씨는 고개를 저었다. 세이 씨와 렌코는 왠지 다른 한신 팬 사람들과 함께 롯코오로시를 부르고 있었다.

「근데, 주운 사람이 왜 세이가 아니고 나라고 생각했는데?」

「――세이 씨보다, 나츠리 씨가 관전 중에 냉정하게 보였으니까요. 그리고……저기, 만약 아니라면 죄송합니다만.」

「응?」

「나츠리 씨는―― 좋아하는 팀은 원래 한신이 아니죠?」

그 순간, 나츠리 씨는 터트리듯이 웃었다.

어안이 벙벙한 내게, 나츠리 씨는 고개를 몇 번 흔들고는, 그리고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 미안. 정말 대단해. 엄청난 명탐정인걸. ――어떻게 알았어?」

「……코시엔의 시합에서 처음 만났을 때. 메이테츠 상대로 한신이 이겼잖아요.」

「그래, 그랬지.」

「그때, 등번호 7번 유니폼을 입었던 나츠리 씨가, 카라스마의 인터뷰를 듣지도 않고 쓰레기를 버리러 간 게, 돌이켜보니 이상했다고 생각했어요. 쓰레기를 그렇게 급하게 버릴 필요도 없는데. 시합 중에도, 렌코나 세이 씨가 안타나 득점이 터질 때마다 소란을 피웠는데, 나츠리 씨는 냉정했고요.」

「애초에 그렇게, 방방 뛰어다닐 일도 아닌데. ――뭐어, 응. 나는 원래 메이테츠 팬이야. 여기로 왔을 때부터, 어수룩한 선배한테 영향을 받고 응원하게 됐지만 말이야.」

한 번 더 세이 씨를 돌아보고 나츠리 씨는 웃었다.

「세이 씨는, 모르나요? 그 일.」

「말 안했으니까 모르지 않을까. 뭐, 올해 메이테츠는 도중에 탈락하기도 했고, 일본 시리즈 때는 진심으로 한신을 응원했어. 그건 진짜야.」

손에 들고 있던 한신 메가폰으로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하고, 고개 들어 담쟁이덩굴로 덮인 코시엔의 외관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 존재감 있는 모양새를 올려다본다.

「꿈이 깨져도, 프로야구는 그걸로 끝나진 않지. 고교 야구와는 다르게도.」

한신 타이거즈가 태어나고 150년. 고교 야구의 성지이기도 한 이 구장에는 무수한 낙담과 환희가 생겨나, 그때마다 환성은 울려 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년에도 또, 그 후에도 계속된다.

「봐, 그 증거로, 지금 다들 즐거워 보이잖아?」

혼잡한 사람들을 바라보니 지금부터 있을 축제에 가슴을 설레는 한신 팬들의 모습.

「지난 일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보다, 다음을 믿고, 내년의 환희를 꿈꾸면서 성원을 보내는 것이, 프로 야구를 올바르게 즐기는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때 함께 롯코오로시를 부르던 다른 팬들과 손을 흔들면서, 렌코와 세이 씨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왜 그래, 메리. 나츠리 씨랑 뭔가 엄청 얘기한 것 같던데.」

「으응, 별로 대단한 얘기도 아니야.」

나츠리 씨는 어깨를 움츠리면서 「근데, 오늘은 티켓 제대로 챙겼겠지?」하고 세이 씨에게 물었다. 「제대로 있어요!」하면서 티켓을 꺼내고, 세이 씨는 뾰로통해졌다.

그때, 지나가던 누군가의 어깨가 세이 씨와 부딪쳤다.

「앗.」

그러면서 세이 씨의 손에서 티켓이 떨어지고.

――마침 부는 산들바람에 작은 티켓은 날아갔다.

「아아아아앗――」

세이 씨가 소리를 지르고, 나츠리 씨는 고개를 뚝 떨어뜨렸다.

「아 정말―― 너랑 있으면 심심하진 않아, 진짜로!」

그렇게 말하고, 나츠리 씨는 날아가는 티켓을 쫓아 달렸다. 세이 씨는 언제나처럼 우왕좌왕하면서 그런 나츠리 씨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렌코와 마주 보면서 웃었다.

「아참, 메리.」

렌코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면서 내게 내밀었다.

――새로운 공이었다.

「애써 왔는데, 메리도 누구한테 사인 받아가는 게 좋을걸.」

렌코는 그렇게 말하고 자기 공을 손바닥에 굴리면서 웃었다.

나는 그 공을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럴까―― 자, 렌코.」

그리고, 공을 렌코에게 내밀었다. 렌코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응? 뭐야?」

「렌코 이름, 여기 적어줘.」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고개를 젓는 렌코에게 「농담이야」하고 웃으면서 등을 돌렸다. 바보처럼 높은 가을 하늘을 올려본다.

――내가 좋아하는 건, 한신을 응원할 때의 즐거워하는 렌코니까.

그런 진심은, 물론 입으로 꺼내지 않는다. 지금은, 아직.













쇼우 씨의 한신 컬러를 보는 순간부터 한신 소재를 써야만 한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즈린은 도아라[각주:5] 같아요. 터프함을 뽐내는 설치류 포즈!

※오탈자, 미스 등 수정. 지적 감사합니다.


                                                                                                                      浅木原忍
                                                                                                     http://r-f21.jugem.jp/









  1. 불법의 수호신, 발이 매우 빠른 사람을 일컫는다. [본문으로]
  2. 참가인원이 제한된 토너먼트에서 새로운 참가자를 결정하는 권리 [본문으로]
  3. 일본 야구팀 주니치 드래건즈 응원가사 [본문으로]
  4. 한신 타이거즈 응원가 제목 [본문으로]
  5. 주이치 드래건스의 마스코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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